사내유보금은 노는 돈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 중 세금과 배당, 임원 상여금 등으로 지출한 부분을 제외하고 내부에 적립해 신규 투자 등에 대비하는 자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전체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 총액은 1,07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거액이 투자 대기 중이라는 뜻이다. 사내유보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투자촉진을 위해서라는 논리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세계 어디서도 개인소득 탈루방지가 아닌 투자촉진을 목적으로 사내유보금에 과세한 사례는 없다. 고용확대나 경기회복 효과 없이 재무구조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에 만든 과세제도를 다른 누구도 아닌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이 2001년 폐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사내유보금 세금 부과에 대해 "장기적으로 기업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인다고는 하나 소비심리 위축은 여전하고 글로벌 유동성 축소라는 시한폭탄도 남아 있다. 기업이 세금 무서워 더 큰 손실위험을 감수할 것이라는 판단은 어디에 근거를 둔 건지 궁금하다.
문제의 핵심은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있다. 경기여건도 있지만 정쟁에 매달려 각종 경제살리기 법안을 내팽개친 정치권부터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지 기업 때려잡는 몽둥이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도가 왜 아직도 20%대에 머물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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