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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33> 예술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발코니(The Balcony). 파리 오르세 박물관에 소장돼있으며 1868~1869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한때 10억~20억원을 호가하던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현재 6억~10억대에 경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봄의 소리’는 올 초 최종 경매가 6억1,000만원를 기록하며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다른 유명 작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우환의 작품 ‘선으로부터 No.12-12’는 5억940만원, ‘동풍’은 3억6,224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기존 판매가에 크게 못 미치니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뉴스도 나옵니다. 과거에 비해 가격이 떨어진 건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올 연말까지 경매시장에 유명 작가들의 작품 1만3,000여 점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물량 공세’가 시장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의 가치를 논할 때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지극히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합니다. 전자는 예술작품은 공산품과 다르므로 값을 매기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 여기는 경우입니다. ‘심리적인 만족’에 초점을 두고 철저히 감상용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며 작품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품 또는 마음의 위안, 즉 힐링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후자는 시중가에 따라 그 값어치를 환산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때에도 개인의 만족도와 선호도는 반영되지만 그보다 얼마에 거래되느냐에 무게를 두는 것이죠. 되팔 것을 염두에 두고 재테크용으로 경매 물건을 고르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자금 세탁의 목적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개인적 이득을 중시한 경우니 후자에 속합니다. 특히 관련 제도나 감독이 미비한 중국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런 이유로 급성장한 중국 미술품 시장 규모는 공식 통계에 잡힌 것만 2011년도에 428억 위안. 원화로 환산하면 7조7,442여억원에 달합니다. 마치 1637년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을 연상케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단 사고 보자’ 식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니 미술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객관적 지표’인 ‘시장가격’이 정말 객관적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최종 결정가격은 입찰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맞지만 ‘시초가’가 얼마로 책정되느냐에 따라 그 진폭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술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객관적 지표’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문화경제학자들이 계량적으로 미술품 가격에 대한 실증 연구를 해보았더니 가장 중요한 지표가 작가의 네트워크로 측정되는 ‘사회적 지위’로 나타난 것입니다. 과거 프랑스 인상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 연구도 비슷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당시 왕립예술원이 해체되면서 작가들의 실력과 창의성을 판별하는 매커니즘이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비평가, 화상, 부유한 구매자들 간에 교류가 활발해지자 과거의 구조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던 작가들도 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죠. 그 결과 브라크, 피사로, 마네, 모네 같은 미술사의 거장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미술 시장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특정 학맥 중심의 기회 독점, 원로가 좋다고 인정해야만 가치를 발휘하는 작품의 평가구조 탓에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인작가도 관심을 한몸에 받는 새로운 인물도 쉬이 찾을 수 없습니다. 해석의 다양성과 표현의 실험성을 인정한다고 평가되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은 10억원을 호가하는 작품 수가 비교적 많습니다. 숫자가 경쟁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열린 네트워크의 철학을 가졌느냐의 여부가 오늘날 미술시장의 모습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중국 미술품시장의 과열은 기형적인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위조 여부를 가려낼 전문가마저 사기에 동참하는 일이 빈번한데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한참 모자라죠. 어쩌면 그래서 다행입니다.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보완된 장치를 갖추고 그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준비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열린 문에 잡상인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하는 문지기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문부터 여는 게 맞습니다. 고이면 썩는 게 꼭 물만은 아닙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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