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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 부자 가문들의 장수 비결


대한항공의 '땅콩 리턴' 사건 여파로 일부 재벌 3·4세들의 안하무인 행태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부호 가문의 자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단 부의 대물림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 내 자산 규모 10억달러 이상인 185개 가문 가운데 기업 창립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이 3분의1에 달했다. '기회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50년 이하의 역사를 가진 가문은 소수에 불과하다. 173년 역사를 가진 멜론 가문 자산은 120억달러에 달하고 핍스 가문(113년 역사)도 61억달러에 이른다. 156년 역사의 록펠러 가문도 선조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엄청난 돈을 사회공헌 활동에 썼지만 아직도 100억달러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

또 기업 창립 100년이 넘었는데도 후손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상당수 눈에 띄지만 전체에 비해서는 비율이 크지 않다. 가족기업인 듀폰·카길·SC존슨 등은 후손들이 경영을 주도하지만 능력이 검증된 자손으로 한정하고 있다. 19세기 말 '철강왕'으로 불렸던 앤드루 카네기의 경우 외동딸에게 소액의 현금과 개인 집만 남겼고 당시 3억5,000만달러, 현재 가치로 48억달러를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대신 미 전역에 남아 있는 200여개의 도서관, 카네기멜론대, 카네기재단 등이 카네기의 이름을 아직도 추모하고 있다.

사회공헌 활발·전문경영인 체제 구축

이들 부자 가문이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기업 지배 구조가 가족기업이었던 만큼 이들도 2세에게 경영권을 세습했다. 자기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준다니 사회적 저항감도 적었다. 하지만 3세 체제로 내려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민적 반감은 둘째치고 재산 유지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상장사인 경우 상속세 부과로 지분율이 희석돼 경영권을 사수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다 시장환경이 급변하는 마당에 무능한 후손이 기업을 맡았다가는 재산 싸움을 벌이다 동반 몰락하기 십상이었다.

대신 이들 부자 가문은 재산을 '패밀리 오피스'에 신탁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의 미래까지도 책임지고 있다. 먹고살 걱정이 없는 자손들은 예술 등 전문 영역이나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존경도 받고 있다. 반면 존 핸콕 등 경영권을 꾸준히 세습한 일부 가문의 경우 오늘날 자취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다.

미국의 경제발전 단계를 보면 이제 한국도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외부 개혁이 아니더라도 재벌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는 얘기다. 또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존립 근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전부터 급증해왔다. 당시 대부분 재벌 2세였던 그룹 총수들은 서둘러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단기간에 외형을 키우기 위한 공격 경영에 몰두했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3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절반가량이 무너졌고 이들 오너도 대부분 경영권을 잃었다.



그나마 재벌 2세들은 어렸을 때부터 창업세대의 열정과 창의성·근검절약을 보고 배워 '기업가 정신'이라도 있었다. 이들은 반도체·자동차 등 한국 주력산업에서 아버지 세대보다 더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반면 일부 재벌 3~4세들의 경영은 '기업 놀이'에 가깝다.

'지배구조 개선' 기업 생존 필수조건

리스크가 두려워 글로벌 경쟁은 싫고 경영은 하고 싶다 보니 사업이라는 것이 빵집·커피숍·명품유통업이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그룹 내 하청 등이다. 이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설 땅을 잃게 만들어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10여년 전 한 대기업 오너는 사석에서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 주는 것이 목적이지 돈만 벌 거면 뭐하러 정부 눈치 보고 잠도 못 자고 이 고생하겠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한국적 정서상 백번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기업을 상속하고 싶다면 최소한 자식들 모두에게 사업 하나씩 챙겨줄 것이 아니라 가장 유능한 자녀에게 경영권을 몰아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 추세라면 과거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미래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이라는 오너 경영의 장점마저 갈수록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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