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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23일] 아크라이트

[오늘의 경제소사/12월23일] 아크라이트 주문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도약의 시대인 18세기, 영국의 면직업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생활형편이 나아진 유럽뿐 아니라 식민지의 의류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수요는 발명을 낳는 법. 더 빨리 실을 뽑아낼 수 있는 방적기가 잇따라 선보였다. 무동력기계의 극치는 수력방적기(water frame).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1768년 만들어냈다. 1732년 12월23일 가난한 농부의 1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크라이트의 첫 직업은 이발사. 어릴 적부터 머리를 깎아 번 돈으로 시작한 가발업은 그의 일생을 바꾸었다. 머리카락을 사러 각지를 돌아다니다 케이(Kay)의 방적기를 보게 된 것. 아크라이트는 즉각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당대에 나온 방적기의 장점을 모은 끝에 수력방적기가 나왔다. 수력을 이용한 자동식 원동기를 작동되는 수력방적기는 생산효율을 배가시켰다. 아크라이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물레방아를 떼어내고 증기기관을 달았다. 방적기뿐 아니라 원면선별기를 비롯한 모든 기계를 모았다. 1771년 더비샤이어에 세운 6층짜리 크롬포드 공장은 세계 최초의 근대식 공장으로 꼽힌다. 동력을 갖춘 일관생산체계와 동력화는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산업혁명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네덜란드가 영국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산업혁명을 낳은 면직공업의 애초 중심지가 네덜란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플란더스의 개’의 무대인 플란더스 지방이 유럽의 면직물시장을 석권하던 17세기 초반까지 영국은 하청공장에 불과했다. 영국이 선두를 차지한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보다 많이 남는 장사’인 중계무역과 금융에 주력한 덕분이다. 네덜란드가 제조업을 버리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권홍우ㆍ경제부차장 입력시간 : 2004-12-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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