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간부 성폭력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석행 위원장을 포함해 지도부 전원이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불길은 내부에서 계속 타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총사퇴는 성폭행 미수 사건이 기폭제가 됐지만 이번 사태를 촉발한 발화점인 조직 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강온파 간의 권력투쟁이 앞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층 지도부가 이념투쟁으로 일관할 경우 현장 조합원들의 조직이탈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파 간 갈등에다 외적 투쟁동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리더십 부재라는 상황을 맞은 민주노총이 조직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못할 경우 조직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는 이유다. ◇ 아직도 이념문제로 권력투쟁 이번 민주노총의 지도부 총사퇴는 내부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 집권파인 국민파(온건파)는 대중성을 중시하는 입장이어서 대정부 투쟁 못지않게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파로 대변되는 강경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노동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진영이 침체기로 접어든 데는 현 집행부의 투쟁력과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고 지도부 개편을 통해 투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성폭력 사건이 계기가 됐을 뿐 누적된 정파 간 갈등이 언젠가는 외부로 분출됐을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상층 지도부 간 권력투쟁이 현장 조합원들의 현실과는 무관한 이념문제라는 데 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민주노총이 아직도 1980년대 민주화투쟁 연장선상에서 이념문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벗어나 비정규직 문제 등 실질적인 문제에 적절히 대응해 국민들에게 좀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도 “민주노총이 내부적으로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여러 의견그룹으로 갈려져 있는데 현 상황에서는 어떤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경제위기와 고용위기를 돌파하기 힘들다”면서 “조직을 근본적으로 일신하는 변화를 맞지 않으면 국민적인 실망은 물론 조직의 존립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강경파 입김 강해질 전망 주노총은 올 연말로 예정된 새 위원장 선거 전까지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된다. 비대위에는 강온파가 골고루 포함될 것으로 보이지만 강경파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법 등 노동관계법ㆍ제도개선과 관련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수석부위원장의 뇌물수수 비리로 이수호 지도부가 사퇴한 뒤 들어선 비대위나 이후 조준호 위원장 체제에서도 민주노총은 투쟁력을 강조하는 강경노선을 취했었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설 비대위가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쟁일변도의 노선을 걸을 경우 현장 조직과 더욱 유리되고 조합원들의 노조 이탈로 조직력이 급격하게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몇 년 새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는 단위 노조가 늘고 있는 것도 현실과 괴리된 투쟁 노선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이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민주노총의 역할이 필요한데 그동안 오만했다”면서 “그동안의 관성에서 벗어나 내부 규율과 리더십을 확립해 여론을 중시하는 조직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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