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계 60여개 정당이 모이는 국제민주연맹 참석차 영국을 다녀왔다. 오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루씩 자고 이틀간 회의하는 강행군이었다. 그래도 필자가 부의장으로 피선되는 성과가 있었다. 시차 때문에 잠이 안 와 TV를 틀면 의회 실황 방송이 볼만 했다. 영국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마주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인다. 야당이 끝장토론처럼 물고 늘어지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 필자가 본 가장 험악한 장면은 야당의 집요한 질책에 질린 데이비드 캐머론 총리가 "그는 길을 잃었다"라고 말하면서 답변을 끝내는 모습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과 다름없는 말에 상대방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다. 영국에서는 의회정치의 본고장답게 의회가 정치를 선도한다. 집권당은 총리와 장차관을 통해서 정부를 지배하고 통제한다. 야당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회의원이 대표하는 민의는 정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관료들은 의원에게 자료도 잘 주지 않고 정부가 하는 일을 의원이 알까봐 쉬쉬한다. 정부는 큰 일이 생겨야 당정협의에 올린다. 예산 증액도 정부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마음 놓고 떠드는 야당 의원이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임위 차원에서는 그나마 정례화된 당정협의도 없다. 필자는 당정협의가 의무화돼 있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지방정치는 더 가관이다.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시장이나 구청장들이 당과 상의하지 않고 전횡을 일삼는다. 공천은 강을 건너면 필요 없는 배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공천이 끝나면 한 명은 배신자, 나머지는 원수가 된다"는 말도 있다. '충성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 보니 공천에서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추한 싸움이 벌어진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공천에서 밀린 측이 선거를 방해하는 사례마저 있었다. 정치가 선진화되려면 개인적 신뢰관계에 의존하는 정치구조를 깨야 한다. 제대로 된 당정협의를 법률과 당규에 의무화해야 한다.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고서 당정협의를 거부하면 당에서 제명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천이 의미 있고 여당 책임론이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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