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1명당 전염력 0.69명' 등 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방역 대책의 토대로 삼은 여러 가설에 대해 보건당국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메르스 환자 수는 총 18명으로 늘어났다. 첫 환자 A(68)씨에게서 감염된 확진자 수가 17명이나 되는 셈이다. 환자 1명당 전염력이 0.69명이라고 했던 보건당국의 가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0.69명 내지 0.8명은 메르스 환자 1명이 지역사회에 뚝 떨어져서 감염시키는 전파력을 의미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제한된 공간인 병원에서 메르스가 일종의 군집발생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3차 감염 사례가 없으며 우리나라에서도 3차 감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가설도 흔들리고 있다. 권준욱 복지부 중앙메르스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이날 열린 메르스 일일 상황보고 브리핑에서 "682명의 격리대상자에는 2차 감염 우려자와 3차 감염 우려자가 모두 포함돼 있다"고 말했고 앞서 지난 5월29일에는 "국내 사례 중 한두 케이스는 3차 감염이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보건당국은 2m 내의 거리에서 바이러스에 한 시간 이상 노출되지 않으면 감염 우려가 없다고 했지만 A씨와 같은 병실도 아닌 같은 병동에 머문 사람들 가운데서 11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보건당국이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2주의 메르스 잠복기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메르스 발원지인 중동 현지에서조차 잠복기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메르스 잠복기 2주는 실험으로 확인된 게 아니고 중동환자 임상을 기반으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의혹은 정부가 키우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날 권 반장은 브리핑에서 A씨가 입원 당시 병원 내에서 거동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 인터뷰도 해봤지만 인터뷰 내용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전문가들과 함께 가설 검증 차원에서라도 좀 더 파악해보겠다"고 말해 아직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메르스 가설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환자 수와 격리대상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내 메르스 환자 수가 18명으로 늘어나면서 자가·시설 격리대상자도 682명으로 확대됐다. 보건당국은 고령자·만성질환자 등 약 35%에 달하는 고위험군 대상자를 시설 격리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150명을 격리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추가로 확보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는 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필요시 민간병원의 격리 병상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메르스 환자가 거쳐갔다는 소문만으로도 환자들이 해당 병원 방문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민간병원이 선뜻 격리 병상을 내줄지 여부는 미지수다. 민간병원이 격리 병상을 내준다손 치더라도 격리대상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압병상 자체가 부족하다. 음압병상은 전국을 통틀어도 104개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정부는 이날 사우디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바레인 등 중동 전체를 메르스 감염 위험국으로 분류했다. 아울러 법무부에 격리대상자를 출국 금지하도록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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