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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11월 27일] 다시 보는 미국경제

슈퍼파워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금융위기 충격이 확산되면서 세계 금융을 주무르던 금융기관들이 잇달아 쓰러지고 미국 자존심의 상징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한 자동차업체들조차 정부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투명한 지경이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세계경제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미국주도의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신용등급 전망을 낮추자 ‘너나 잘해라’는 식의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경제를 장기 불황의 위험으로 내몬 자신들의 몰락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경고 한 번 못하지 않았느냐는 불만이다. 나아가 미국방식에 기초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전후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도 나온다. 1980년대 제조업 위기 후 최악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이번 위기는 미국 경제의 장래는 물론 글로벌 위상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해보인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최대 성장동력인 금융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에 대해 비관론 또는 위기론이 가장 팽배했던 시기는 일본의 공세에 밀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거의 붕괴되다시피한 지난 1980년대였다. 당시 미국은 무너지는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일본식 산업정책, 일본을 비롯한 중상주의 국가들의 시장을 열기 위한 공정무역 잣대와 통상압력, 달러화 절하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상업용 항공기와 화학 등 일부 고기술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을 일본을 비롯한 후발국들에 내주게 됐고 미국 경제는 가망이 없다는 비관론은 힘을 얻는 듯 했다. 그러나 미국은 1990년대 이후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저력을 과시했다.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첨단 벤처 기업과 정보화를 통해 2000년대 초반까지 인플레 없는 신경제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금융혁신을 기반으로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힌 금융산업이 미국 경제를 먹여살리는 새롭고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정보화와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경제는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도체를 비롯한 다른 어떤 첨단산업보다도 첨단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국의 금융산업은 한때 무적으로 비쳐졌다. 이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던 최첨단 금융산업이 재앙을 몰고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높아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어보인다. 과연 미국 경제는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1980년대처럼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을까. 사태가 워낙 심각해 장담은 어려워보인다. 그러나 비관하기에는 강점이 너무 많다. 흑인 대통령을 선택하는 유연하고 성숙된 정치문화, 위기가 닥치면 여야가 힘을 합치는 책임감 넘치는 정치문화는 그 중 하나다.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약인 희망을 만드는 능력을 미국 사회는 갖고 있다. 희망과 믿음을 솟게 하는 저력 미국정치사의 새장을 연 버락 오바마는 포용과 통합의 인사스타일을 구사함으로써 벌써부터 미국 경제를 구해낼 ‘검은 루스벨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월가 증시를 춤추게 하는 티머시 가이스너같은 인재들이 널려 있고 대공황 전공 벤 버냉키가 위기의 순간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맡고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최고의 교육 경쟁력과 기술력,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등도 미국 경제가 쉽게 무너질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안전장치들이자 새 도약의 발판이다. 오히려 ‘맹수가 안마당에 들어와 있는데도 방안에서 법석을 떨고 있는 꼴’로 비유되는 정치와 거기에 발목 잡혀 있는 한국 경제가 훨씬 위험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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