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작가 변종곤(61)의 개인전이 청담동 더컬럼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 문을 열면 사각 액자 속 그림이 아니라 벽에 걸린 콘트라 베이스와 첼로, 바이올린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예술 속의 대가들(Icons of Art)’전은 현악기와 케이스에 그림을 그리고 각종 오브제를 배치한 작품들 16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작품 ‘백남준’을 보자. 부서지고 깨진 바이올린 옆에 걸어가는 백남준의 뒷모습이 있다. 손에는 땅에 끌리는 바이올린을 매단 흰 줄이 쥐어있다. 음악과 미술을 버무려 각종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백남준, 바이올린 위로는 고인의 흑백 가족사진이 작가의 혼을 부르는 듯하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임을 알게하는 ‘골콘다(Golconda)’ 그림 옆에 나체 여인과 새의 오브제가 함께 놓여있다. 마르셀 뒤샹은 자신이 패러디했던 모나리자와 나란히 얼굴을 맞대고 파란 바이올린 위에 서 있다. 마오의 사진을 든 앤디워홀, 퐁네프를 감쌌던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부부, 롱샹 성당을 지은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까지. 바이올린이 거장 시리즈라면 첼로시리즈는 근원적인 질문에 가까이 다가단다. 의류브랜드 베네통 광고를 패러디한 수녀와 신부의 키스장면 뒤로 나사의 로켓이 솟구치는 ‘신으로부터의 입맞춤’은 모든 사랑은 다 용서와 용인 받을 수 있음을 얘기한다. 얼굴 가득 깊은 주름이 패인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에겐 머리 위의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제목마저 덧없는 꿈, ‘데이드림(Day Dream)’이다. 모차르트를 찬미한 작품 ‘비엔나 1761’이 담긴 악기와 케이스는 작가가 경매에서 산 200년 넘은 명기(名器)이다. 갤러리스트에게 돋보기를 빌려 감상하면 더 흥미롭다. 멀리 보이는 5mm도 안되는 건물과 나무들이 생생하다. 필력 좋은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돋보기 안경을 쓰고 두개의 돋보기를 겹쳐 들고 그렸다 한다. 변씨는 한국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막 도약하려던 1978년 돌연 미국으로 갔다. 미군기지를 소재로 한 체제 비판적인 그림을 그린 뒤 스스로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후 3년간 뉴욕 할렘의 빈민가에서 물감 살 돈도 없어 버려진 물건을 주워 오브제로 사용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폐기된 것들에서 문명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고 벼룩시장과 경매를 뒤지는 버릇은 지금도 여전해 뉴욕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창고같다. 그는 미국 뉴욕타임즈는 ‘문명 비평가’라고 극찬한 작가다. 하지만 6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을 위해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던 대구의 제자들이 버스를 대절해 왔을 정도로 정감이 있는 작가다. 전시는 열흘 연장돼 6월10일까지 열린다. (02)3442-6301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