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후원활성화법 시행 불구 조특법 개정 더뎌 세혜택 발목
정부 제도개선 등 앞장서고 기업은 메세나 인식 바꿔야
문화단체 수익성 개발도 필요… 3박자 갖춰야 후원 확 늘어
# 2007년 프랑스 문화계는 16세기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이 그린 회화 '이집트로의 피신'으로 떠들썩했다. 당시 이 국보급 회화를 개인 소장자가 경매에 내놓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작품의 해외 반출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엄청난 예산문제로 정부조차 쉽게 나서지 못할 때 루브르 박물관이 나섰다. 박물관은 자국 기업에 작품 구매비 모금을 요청했고, 20개가 넘는 기업은 1,700만 유로를 모아 그림을 사들였다. 이 작품은 현재 리옹의 보자르 미술관에서 영구 전시 중이다.
◇파격 세제 지원하는 선진국=프랑스에서 국보급 회화를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데는 문화에 대한 민간의 참여 의식과 함께 파격적인 세제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는 2003년 8월 1일 '메세나와 재단 그리고 협회에 관한 법'을 제정해 문화 후원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법안의 내용은 소득세나 법인세 대상이 되는 기업이 매출액 1.5% 한도 내에서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 예술조직과 활동에 지원한 금액의 60%까지 세액을 감면해준다는 것이다. 한국메세나협회와 프랑스 기업메세나협의회(ADMICAL)에 따르면, 관련법 제정 직전인 2002년 2억 유로였던 프랑스 기업의 메세나 지출 총액은 2005년 4억유로, 2008년 6.2억 유로, 2012년 10.07억 유로로 급증했다.
메세나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도 문화예술 부문 비영리단체에 기부할 경우 개인은 총소득의 50%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를, 기업은 매출의 10% 한도 내에서 손금 처리를 해준다. 영국은 '공익사업' 인정을 받은 기업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 등에 혜택을 준다.
◇한국은 조특법에 막혀 메세나법 겉돌아=반면 한국의 문화예술 부문 기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12년 기준 기업 기부금의 2%만이 문화예술분야에 들어가고 있다. 개인들의 기부는 0.2%. 프랑스 기업과 개인의 문화예술 분야 기부 비중은 39%, 5%다.
한국 역시 지난해 7월 29일 문화예술 후원 기업에 혜택을 주는 내용의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메세나법)'이 시행됐지만, 가장 중요한 조세감면 조항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내용은 기존 문화 기부금 손금산입(법인세 산정시 기부금을 지출로 인정)에 매출액의 0.5% 한도에서 기업의 예술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10%), 기업의 문화예술을 활용한 교육훈련비에 대한 세액공제(중소기업 20%, 대기업 10%)를 추가해 달라는 것이다.
한미회계법인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2012년 문화예술 기부금 세액공제제도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부금 세액공제율을 10%로 하고, 문화예술 활용 교육훈련비의 세액공제율은 중소기업 20%, 일반기업 10%로 가정했을 때 기업의 예술기부금 및 예술소비는 872억 순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산에도 불구하고 개정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세수 부족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세제 혜택을 당근 삼아 정책을 추진하는 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공공·민간·예술계 3박자 쿵짝 필수=한정된 정부 재원으론 문화예술계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회 사무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공공 지원금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수년 내 고갈될 것이라는 위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고, 다른 공공 재단들도 원금의 이자로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원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직접지원이 어렵다면 민간에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장애물(세제)만 치워달라는 것이다.
영국의 '뉴파트너십'은 현실성 있는 대안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뉴파트너십은 문화예술단체를 민간에서 지원하고, 해당 단체는 기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칭 시스템. 정부는 기업의 지원금액에 비례해 매칭펀드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메세나 사업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도 2006년부터 한국메세나협회를 중심으로 기업- 문화예술단체 결연이 이뤄지고 있다. 2006년 17건이었던 결연 건수는 지난해 194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예술단체 자체의 수익성 회복도 필수라는 지적이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일방향적 수혜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에 갇혀 수입과 지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 처장은 "영국, 미국은 작은 미술관조차도 펀드레이저(자금 모집 및 운영 담당)를 두고 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 혜택 외에도 예술 기부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크라우드 펀딩이나 소액 기획 후원 등을 활성화해 '예술기부가 꼭 고액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다양한 기업과 개인의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발족한 범국민 문화예술후원 캠페인 '예술나무 운동'은 지난해 말 기준 개인 3억원, 기업 20억원 등 총 23억원의 후원금이 쌓여 자금이 필요한 문화예술 분야에 사용됐다. 참여자들은 여러 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 중 취지에 공감하는 기획을 선택해 소액 기부를 펼치게 된다. 예술나무를 통해 소록도 벽화 작업 비용이나 다문화가정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안녕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구매 비용이 이 같은 십시일반으로 마련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사회통합, 치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등 다양한 목적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점과 함께 소액으로도 얼마든지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수"라며 "이를 통해 규모가 작은 기업은 물론 0.2%에 불과한 개인의 문화 기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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