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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어떠한 국정운영 철학과 경제정책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할까. 5년 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취임식은 단순한 '일회성'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대한민국호(號)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계산된 경제행위이기도 하다. 이른바 '취임식 경제학'이다. 박 당선인은 이날 취임식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할까. 숨은 그림을 찾는 기분으로 취임식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 목표와 철학을 알 수 있다.
우선 박 당선인이 대선기간에 시대정신으로 내세운 '국민대통합' 메시지를 담았다. 이번 대선에서 불거진 세대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시대통합 차원에서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출연진이 시대별 대표곡을 부른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와 '노란 셔츠의 사나이' '님과 함께' 등은 지난 1950~1960년대를 대표하고 '고래사냥'과 '여행을 떠나요'는 1970~1980년대의 추억을 되살린다. 1990~2000년대를 위해서는 '난 알아요'와 '오 필승코리아'가 울려 퍼지고 요즘 신세대를 위해서는 글로벌 가수 싸이가 '챔피언'과 '강남스타일'을 열창한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국방ㆍ안보 이미지도 강조한다. 현충원 참배의 경우 이전에는 정부대표들이 주로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유가족과 국가유공자 등 35명이 자리를 함께 한다. 전쟁 상이군경, 6ㆍ25전쟁 무공자, 전몰군경 가족, 연평해전 유족, 최원일 천안함 함장 등이 참석한다.
박 당선인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서민들의 아픔을 수첩에 적어뒀다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경청과 소통의 이미지도 취임식에 투영된다. 박 당선인이 커다란 복주머니를 열고 희망이 열리는 나무에 걸려 있는 365개의 조그마한 국민 복주머니에서 희망 메시지를 꺼내 읽는다. 남은 희망 메시지는 청와대로 옮겨져 정책으로 연결된다.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이번 취임식은 국민대통합과 소통을 바탕으로 희망찬 새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면서 "박 당선인이 대선기간에 국민들과 약속했던 국정운영 철학이 곳곳에 배어 있다"고 설명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은 '탈권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취임식의 권위적인 모습을 없애기 위해 대통령 문장을 나타내는 봉황 대신 '태평고' 엠블럼을 사용했으며 취임식 연단 높이도 낮춰 국민들과의 친밀감을 높였다. 이 대통령의 취임식은 '경제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취임사를 사상 처음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취임식은 섬기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실천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국민의 대표, 외빈을 우선적으로 배치했으며 통상 단상에 자리하던 새 정부 장관 내정자와 청와대 수석 내정자는 무래 아래에 앉도록 했다.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사상 첫 국민대표가 참여하는 이색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참여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회의원과 주요 외빈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국민대표 50인을 초청해 단상에 배치하고 국민참여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 취임식에 일반국민의 취임식 아이디어를 접수해 반영했으며 인터넷 추첨을 통해 참석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2만여명의 일반국민들을 초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례적으로 운동권 가요도 축하공연에 포함됐다.
외국 정상들도 취임식을 통해 국정운영 철학을 국민들에게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시진핑 정권 탄생의 서곡이었던 18차 공산당 당대회(전국대표대회)는 참석대표 명단에 노동자 등 신진세력이 대거 포진해 차기 정권이 '친서민ㆍ반부패' 드라이브 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할 것임을 예고했다. 중국 최고지도부를 뽑는 이들 2,200여명의 대표들은 과거에는 각 성ㆍ시 서기 등 공산당 지도자 일색이었지만 이때부터 농민공, 대학생 농촌관리 등 서민 대표들이 대거 발탁됐고 이후 지난해 말부터 전국적으로 당 고위 부패간부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진행됐다. 대표적 변화의 예로 20만여명의 대학생 농촌관리(대학 졸업 후 곧바로 농촌 지도자를 자원한 젊은이들) 중 처음으로 당대표에 선출된 스레이(24)씨가 대표회의석상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담화를 나누는 것이 연일 중국 관영 CCTV에 반복해서 보도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미국사회의 보수성을 타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취임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동성애자(gay)'라는 표현과 함께 건강보험 개혁, 여성, 총기규제, 기후변화 등 진보 어젠다를 거침없이 내놓았다. 총기학살을 목격한 초등학생과 유가족들을 초청해 총기규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미국 사회에 전달했으며 총기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연일 대중 스킨십을 강화하며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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