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정적자와 나랏빚에 허덕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전면 구제금융 신청시기를 놓고 서로 눈치를 보며 '버티기'를 하고 있다.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 전제조건에 대해 유럽연합(EU)과 긴축이행 협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지원할수록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6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구제금융 신청 국가의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건을 내세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스페인은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까지 버티다 이탈리아와 동시에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구제금융 조건과 관련한) EU 및 ECB와의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구제금융 신청 여부를) 말할 수 없다"고 해 구제금융 신청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었다.
이탈리아 역시 ECB가 제시할 구제금융 조건이 명확해질 때까지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ECB에 국채매입 요청을 주저하는 것은 ECB가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며 "ECB는 추가 긴축개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즉 두 국가 모두 상대편의 구제금융 협상과정을 지켜보며 EU 측에서 꺼내는 카드를 확인한 후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상황을 놓고 봤을 때 급한 쪽은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6%선을 오르내리며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오는 10월 만기 도래하는 국채 규모도 310억유로가 넘는다. 이 때문에 27일 스페인이 발표한 내년 예산안도 구제금융 신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내년도 예산의 8.9%를 삭감하고 공공 부문에 대한 예산안을 3년간 동결하는 한편 400억유로 규모의 재정적자를 감축하기로 했다. 또 27일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정부가 발렌시아ㆍ무르시아ㆍ카탈루냐에 이어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탈리아도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몬티 총리 취임 이후 200억유로 규모의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세금부담이 높아져 내수소비가 감소하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도 120%대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10년만기 국채금리도 올해 초 구제금융 신청 마지노선으로 간주되는 7%를 넘어선 후 최근 5%대로 내려갔지만 언제라도 급등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또 내년 4월 총선에서 정권이 바뀌어 그동안 진행해온 긴축안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총선 전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니콜라 마리넬리 글렌데본킹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확실한 목표하에 개혁을 진행해야 총선 이후 정치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유럽 구제기금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스마트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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