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양학선' 기술 완벽 소화… 도마의 神으로
■ 양학선, 한국 체조 사상 첫 금공중에서 세바퀴 비트는 7.4 최고 난이도 구사"고향 고창 석교리에 부모님 집 짓고 싶어"
양준호기자 miguel@sed.co.kr
전광판에 '7.40(기술 난도)'이 찍혔다. 도마 사상 가장 높은 난도인 양학선(20ㆍ한국체대)의 이름을 딴 바로 그 기술, '양학선(YANG Hak Seonㆍ양1)'이었다. 구름판을 정면으로 밟아 공중에서 세 바퀴(1,080도)를 비트는, 양학선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도움닫기 했지만 사뿐히 날아오른 양학선은 착지에서 두 발을 걷는 약간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도 워낙 고난도 기술이라 16.466점으로 1위 기록을 찍었다. 관건은 2차 시기에서의 점수 관리. 7.00짜리 난도를 택한 양학선은 완벽한 공중 연기를 펼쳤고 착지에서는 미동도 없었다. 금메달을 확신한 양학선은 만세를 부르며 도마를 '쾅' 쳤고 경쟁자들은 점수가 나오기도 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조금 뒤 확인한 1ㆍ2차 시기 평균 점수는 16.533점. 2위 데니스 아블랴진(러시아ㆍ16.399점)을 여유롭게 따돌리는 '퍼펙트 골드'였다.
이로써 런던 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 종목이 끝난 7일(한국시간)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는 올림픽 체조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 체조가 올림픽에 처음 나선 1960년 로마 대회 이후 52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양1 기술로 우승을 차지, 런던 올림픽 금메달 전망을 밝혔던 양학선은 '노 메달' 악몽을 꾸는 등의 엄청난 압박감을 견뎌내고 한국 체육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었다.
◇수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다=양학선은 사실 한국 선수단 가운데 금메달이 가장 유력한 선수였다. 효자종목 양궁이나 첫 번째와 열 번째 금메달의 주인공 진종오(남자 사격)보다도 더 확실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변의 희생양이 될 확률도 가장 높았다. 실수 하나로 천당 문턱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심판의 '장난'이 개입할 여지도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로 여홍철이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눈앞에 뒀다가 평소에 하지 않던 착지에서의 큰 실수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양태영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개인종합 평행봉에서 오심 탓에 동메달에 머물렀다. 심판들의 기술 난도 착각으로 0.1점을 손해 봤다. 제대로였다면 금메달이었다. 한국 체조는 그동안 개인종목에서 은 4, 동메달 4개를 땄다. 금메달에 근접하고도 이런저런 이유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이번에는 달랐다. 양학선은 어쩌면 세계 체조 사상 가장 압도적인 기량으로 골치 아픈 변수들을 날려버렸다. 최대 라이벌인 토마스 부엘(프랑스)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것도 양학선의 부담을 덜어줬다.
◇금메달로 지을 고향집=양학선의 본가는 전북 고창의 석교리라는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 양학선의 아버지 양관권(53)씨와 어머니 기숙향(43)씨가 산다. 비닐하우스를 집으로 개조했고 방은 단 한 개다. 공사장 미장기술자였던 양씨가 허리와 어깨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을 접고 2년 전 광주에서 고창으로 이사했다. 텃밭에 농사를 짓고 닭, 거위 등 가축들을 길러 막내이자 집안의 대들보인 양학선을 뒷바라지해왔다. 그런 부모님에게 번듯한 집 한채 마련해드리는 게 소원이던 양학선은 태릉에서 빚고 런던에서 목에 건 금메달로 마침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됐다. TV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환한 웃음을 보고는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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