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내국 발행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 거품 현상이 심각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5월부터 해외투자가들에게 내국채 시장을 개방했지만 현지 발행채권들에 대한 신용등급이 과대평가돼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위안화 표시 중국 내 국채 중 약 97%가 토종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AA' 등급에서 'AAA' 등급에 이르는 최우량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며 평가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에서는 'AA' 등급 이상의 내국채 비중이 총 발행물량의 1.4%에 불과한 반면 중국 내국채 시장에서는 상반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이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논란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미국계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헝다그룹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로 강등했지만 5월 중국의 3대 토종 신평사들은 이 그룹의 내국채에 대해 'AAA'의 등급을 매겼다.
다른 중국기업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세계 최대 석탄채굴 업체인 예저우광업에 대해 영미계 신평사 피치는 'BB-' 등급을 부여한 반면 토종 신평사인 청신국제신용평가와 다궁국제신용평가는 'AAA' 등급을 달아줬다. 이밖에 중국 최대 정유업체 시노펙의 경우 해외 신평사로부터 'A+' 평가를 받는 데 그친 것에 비해 토종 신평사로부터는 'AAA'로 분류되는 등 중국 주요 기업 및 기관에 대한 국내외 신평사들의 평가 격차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토종 신평사들은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내국채 발행 주체의 상당수가 중앙 및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기업·공공기관이어서 신용등급을 높게 매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해외 신평사들도 중국 내국채 심사 시 공기업 여부를 평가하지만 지방공기업이냐, 중앙공기업이냐 등의 여부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고 있어 이 같은 논리만으로는 신용등급 거품 논란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중국의 토종 신평사는 모두 9곳이며 그중 상위 3대 업체는 청신과 다궁, 그리고 롄허신용평가다. 이 중 청신의 지분 가운데 49%는 미국계 신평사 무디스가 보유하고 있으며 롄허 지분의 49%는 피치가 소유하고 있지만 경영권은 중국 토종 대주주가 행사하고 있어 평가업무의 국제적인 투명성 여부를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리전위 롄허 시장조사담당 최고책임자(CRO)도 "국내 신용평가기관들의 업무에 대한 감독규제가 여전히 덜 선진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기관들이 발행하는 해외채권의 안전성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면 실물 자산이 없는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를 통해서만 발행이 가능해 부도를 낼 경우 해외투자자들은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고 깡통을 찰 수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