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직접 검시'로 묻힐 뻔한 성폭행 밝혔다
檢, 개정 지침따라 새 물증 발견… 내연녀 살해범 강간혐의 추가해 기소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지난해 10월 A씨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B씨를 자신의 승합차로 불러 성폭행을 시도했지만 B씨가 저항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A씨는 여기서 범행을 멈추지 않고 같은 해 12월 내연관계였던 B씨를 자신의 차량으로 또 한번 유인했다.
A씨는 B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사 성행위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반항하는 B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B씨가 숨진 사실을 확인한 A씨는 인근 휴게소 맨홀에 B씨의 사체를 버렸다.
B씨가 귀가하지 않자 B씨의 남편은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를 검거하고 B씨의 사체를 발견했다.
경찰로부터 변사 사건 보고를 받은 검찰은 강력전담검사를 사건 현장에 보내 시신을 확인하고 인근 병원에서 직접 검시를 진행하게 했다.
개선된 '변사 업무지침'에 따른 조치였다.
검경은 지난해 도피행각 중이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일반 신원미상 변사 사건으로 처리해 40일 동안 신원파악조차 하지 못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해 10월 변사 업무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변사 업무지침'을 전면 개정했다.
개정된 지침은 신원미상 변사체의 경우 검사가 직접 현장을 검시하고 법의학적 방법을 동원해 신속하게 신원을 파악하도록 했다.
또 살인이나 타살 의심 사건의 경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강력전담 형사부 검사가 전담하도록 하고 자살이나 교통사고 등 일반 변사 사건이라도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거나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검사가 직접 검시하도록 했다.
B씨의 시신에서 살해된 정황이 포착된 만큼 검찰은 새롭게 변경된 지침에 따라 일처리를 진행했다.
이번 사건의 검시를 맡은 수원지검 홍민유 검사는 직접 B씨의 사체를 검시하면서 B씨의 입안에서 음모 3점을 발견했다. 홍 검사는 살해 과정에서 성폭행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경찰에 범행 경위 등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라고 지휘했다.
경찰은 A씨가 성폭행 혐의를 부인함에 따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혐의를 적용하지는 못하고 살인과 사체은닉죄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검사의 검시 과정에서 확인된 A씨의 무릎에 난 이빨 자국, 피해자의 입에서 발견된 음모 3점을 근거로 A씨를 여러 차례 조사하면서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아낼 수 있었다.
수원지검은 검사의 직접 검시를 통해 확보한 물증을 바탕으로 A씨의 자백을 받아낸 후 강간상해 혐의를 추가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변사 업무지침 개정 이후 현장으로 나가는 검사들이 많아졌다"며 "앞으로도 직접 검시를 활성화해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변사 처리업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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