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임단협 과정에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에 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임단협 교섭이 결렬된 후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예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정기상여금이 정기성과 일률성·고정성을 충족하면 통상임금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판결 후 정기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의 요건 중 하나인 고정성 충족 여부가 또다시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통상임금 분쟁이 제2라운드에 접어드는 국면이다.
2012 교섭 때 법원판단 따르기로 합의
최근 한국제너럴모터스(GM)와 쌍용차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의 배경은 정기상여금이 근무일마다 일정액을 지급하기로 한 임금(일할 계산)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GM의 사례는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충족돼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한 것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같이 정기상여금이 일정한 근무일수를 채워야만 지급되는 사례는 통상임금 요건 중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한국GM과는 경우가 다르다. 이러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현대차는 어떠한가.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 등에 따르면 15일 미만 근무자에 대해서는 정기상여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다. 현대차는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이 결여된 대한항공·신흥교통 등의 사례와 유사하고 한국GM과 쌍용차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노사 이견으로 현재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관해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노사관계에서 집단적 노사자치가 최선이고 중요한 원칙이라 믿고 있다. 국가(행정부나 사법부)의 개입 없이 노사가 자율적으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현대차 사례처럼 노사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전혀 양보하지 않을 때, 즉 집단적 노사자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민주국가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가 차선으로 기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법부가 역할을 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한다. 현대차의 사례처럼 집단적 노사자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는 더 그렇다. 노사가 법원에 해당 문제에 관한 해석을 맡기고 판단이 내려지면 이를 존중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답이다.
결과 나오기 전 무리한 행동 법치 침해
때마침 중앙노동위원회는 최근 현대차 노조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기한 안건에 대해 '조정대상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2012년 임금교섭에서 소송으로 해결하기로 한 만큼 금번 교섭에서 다루기보다 별도 협의체에서 협의할 것을 권고한다"며 "세계적인 기업에 걸맞은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성실히 교섭해 조기 타결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통상임금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법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인지에 관한 법원의 판단이 회사 측에 불리할 수도 있고 노조 측에 불리할 수도 있다. 노조든 회사든 법원의 판단이 자기 측에 불리할 것이라고 예단해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어떤 판결이 나오든 노사는 판결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이는 민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덕목이다. 지금 현대차 노사는 모두 인내심을 갖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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