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줄줄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쇼크가 금융 시장을 뒤흔들었다. 삼성-엘리엇 분쟁, 롯데가 경영권 혈전 등도 주식 시장뿐 아니라 경제에 상처를 남겼다. 연초에는 포스코그룹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KB 사태로 금융권이 시끄러웠다.
각각 다른 이유로 촉발된 한국 기업들의 몸살에는 공통된 문제가 깔려 있다. 바로 '지배구조 문제'다. 외국의 경우 지배구조 문제의 원인은 보너스를 노리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경영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경영진이 기업의 장기성장보다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화려한 경영성적표를 내밀며 일반 직원들의 2,000배가 넘는 연봉을 챙겨 갔다. 이 과정에서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감사·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거수기가 됐다.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다. 금융위기가 닥쳐(혹은 그런 행태가 금융위기를 초래해) 회사가 휘청거렸고 이는 주주들의 막심한 피해로 이어지거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귀결됐다. 이익은 사유, 손실은 공유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낳은 부작용이다.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문제는 이와는 다른 양상이다. 첫 번째는 정권이나 금융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공기업 아닌 공기업'들의 경영진이 초래하는 지배구조의 문제다. 이런 경영진은 주주나 이해관계자의 눈치가 아니라 자신들을 투하시켜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경영을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에 따라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경영방향은 오락가락이다. 부실은 숨기고 코드 맞추기와 외형 키우기에만 혈안이다.
두 번째는 오너가의 승계 문제에서 비롯되는 대리인 문제다. 기업을 키워낸 오너들이 자녀들에게 거대해진 부와 경영권을 물려주려다 보니 오너 경영진 혹은 이들이 임명한 전문경영인들은 전체 주주에게 동등하게 기업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 승계와 상속이 주 관심사다. 기업의 장기성장이나 주주에 대한 환원보다는 누가 기업을 승계할 것인가, 상속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경영 판단은 무엇인가가 우선순위다.
지배구조 문제는 더 이상 우리 경제의 막연한 리스크가 아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이사진이 거수기가 되든 승계를 누가 하든 문제 삼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고도 성장으로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에게 화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배구조 문제는 한국 증시에 대한 고질적인 저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진이 전체 주주가 아닌 특정 주주, 심지어 주주도 아닌 세력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누가 그 주식을 탐내겠나. 성장에도 걸림돌이다.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지배구조가 기업 성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증거를 롯데 사태에서 목격하고 있다. 사외이사와 감사가 경영진이 기업의 장기 성과와 주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견제하고 연기금·자산운용사들이 수많은 주주를 대신해 스튜어드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이제 한국 기업들의 성장 발판이다.
/이혜진 금융부 차장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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