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불과 4개월 전 배럴당 100달러대였던 유가는 최근 65달러대로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의 심리적 균형선이었던 70달러대 유가도 맥없이 붕괴됐다.
유가하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점쳐졌었다. 글로벌 경제가 수년간 침체국면에 있었던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유가는 지난 3년간 100달러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란 핵 문제, 리비아 반군사태, 나이지리아의 과격단체 테러 등 주요 산유국들의 정치불안이 유가하락을 저지한 것이다. 국제 석유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치불안으로 감산된 석유가 하루 약 350만배럴이나 됐으나 지난 3년 사이 미국의 셰일오일이 300만배럴 증산됐고 캐나다도 100만배럴 늘어나 북미 석유 증산량이 산유국의 감산량을 상쇄했다는 것이다.
치킨게임땐 30불대 까지도 추락
최근의 유가하락은 산유국들의 정치불안이 줄어든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격하락을 통해 그들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는 미국 셰일오일을 퇴출시키려는 '치킨게임'을 계속한다면 유가는 30∼40달러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게임은 국가재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OPEC 국가들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감산조치를 통해 유가가 반등을 꾀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게임을 하든 상당기간 유가는 약세를 보일 것이다. 한해 전체 수입액의 약 30%인 1,800억달러를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유가하락 현상을 매우 반길 만하다. 그러나 유가하락의 득과 실은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중동 등 산유국 사업 비중이 높은 해외 건설경기가 침체되고 정유화학과 해양 플랜트 등 일부 산업들은 저유가의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지난 수년간 확대됐던 자원개발 산업이 다시 주저앉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어렵게 확보한 광구들을 1997년 외환위기 때 대부분 매각했으나, 고유가 시기가 도래하면서 몇배의 프리미엄을 주고 광구를 다시 확보했다. 이제 저유가 시기가 도래하면서 그동안 확보한 광구들에 대한 매각 압력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공기업들은 그동안의 자원확보로 부채율이 높아진 가운데 최근 유가하락으로 자원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져 광구매각 압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제기업들도 저유가 시기에 광구를 매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우리 공기업의 경우 기업 전략보다 외부의 가이드라인에 떠밀려 매각하려는 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자원개발 사업은 통상 20~30년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하는 사업인데 고유가 시기에는 성급하게 광구를 확보하고 저유가시기에 서둘러 광구를 매각한다면 우리나라 자원안보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쌀때 사고 쌀때 팔면 미래없어
더욱이 최근 해외 자원개발 사업들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는 가운데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통계수치들이 여론을 자극해 '공공의 적'으로 몰리면서 자원확보에 대한 국가전략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유가로 생산비가 높은 광구들이 사라지면 석유시장은 다시 수급이 부족해지면서 유가가 상승할 것이다. 여기에 국제 정치불안이나 경제 활황기가 도래하면 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이 그동안 석유시장에서 반복된 현상이었다. 최근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현재 유가하락 추세는 조정과정이고 처음이 아닌 익숙한 현상이라며 유가하락은 악재가 아닌 기회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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