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두 나라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지난달 한일 국방장관과 재무장관이 잇따라 회동한 데 이어 21일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양국 정상도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도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최근 "상당한 진전이 있으며 협상의 마지막 단계"라고 밝혔다. 꽉 막힌 양국관계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다만 관계개선이 이뤄진다 해도 한일관계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체제에 편입돼 있고 안보상으로는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었다. 일본의 선진기술을 배운다는 현실적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련의 사태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입 규모는 2,353억달러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게다가 자위대 해외파병 허용 등 일본의 우경화는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의 지지 속에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버렸다.
환경이 변한 만큼 한일관계의 틀도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과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되겠지만 이웃 나라라고 무조건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전략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지금은 서로에게 필요한 분야에서 힘을 합치는 '선택적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정경분리의 투트랙(two-track) 외교는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그릇된 역사인식이나 독도 도발, 우경화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협력은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료들의 만남만으로 이 모든 걸 푸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는 양국 정상이 직접 나서 앞으로 반세기 동안 한일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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