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자사주 취득 붐이 일고 있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 상승에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 고용을 늘리는 대신 과도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만 사용하면 미래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로젠블래트 증권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편입된 기업들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지난달의 자사주 매입은 가히 폭발적이다. 리서치 기관인 비리니 어소시에이츠는 최근 지난달 S&P 500기업이 1,180억달러의 자사주를 사들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같은 취득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 것이다. 홈 디포, 타임워너, 제너럴 일렉트릭, 3M, 펩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 각 업종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망라됐다. 지난 5일에는 세계 최대 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퀄컴이 현재 진행 중인 4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의 규모를 50억달러로 늘리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퀄컴의 주가는 2.4% 올랐다.
올 초 가까스로 타결된 재정절벽 협상에서 배당세율이 연소득 45만달러 이상 가구의 경우 종전 15%에서 20%로 인상 배당세율이 인상은 자사주 열풍의 또 다른 요인이다. 당시 기업들이 주주이익 환원의 방법으로 세율이 올라간 배당 대신 자사주 취득을 선호할 것으로 예측됐고, 이것이 실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자사주를 취득해 유통주식 수를 줄이게 되면 주가이익비율(PER)을 낮아지고, 이는 주가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또 많은 미국 기업들이 보너스를 책정할 때 창출된 주당이익규모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 자사주 취득은 경영진들의 수입과도 직결된다. 주주 환원이 곧 경영진의 보너스를 늘리는 길인 셈이다.
롭 레이파트 비리니 어소시에이츠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이익증가 등으로 들어오는 현금으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자사주 매입 규모의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며 "배당세율 인상은 이러한 흐름에 촉매가 됐다"고 분석했다.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다우지수를 비롯, 뉴욕증시의 호황도 이러한 자사주 매입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목소리 큰 주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대신, 그 돈으로 인수합병(M&A)를 하거나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또 많은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이 전략적 사고 없이 이뤄져 실제 주가 부양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다. 특히 현재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의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을 때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자칫 고점에서 주식을 매수하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금 여력이 없는 기업들이 너도나도 자사주 취득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레이놀즈 로젠블태트 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발표가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크레딧 붐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며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자사주 취득에 나서고 있고, 지난달 그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고 말했다.
레이놀즈 애널리스트는 또 최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부채담보부증권(CDO)까지 발행하면서까지 기업들이 자사주 취득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 직전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저금리 환경 속에서 자금을 빌려 기업의 펀더멘털과 관련이 없는 자사주 취득에만 이용하면 이는 향후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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