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에 비상이 걸렸다. 올 1ㆍ2월까지 지난해보다 덜 걷힌 국세는 6조8,000억원에 이른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가 예상보다 12조원가량 부족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욱이 기초노령연금제나 무상보육 확대 등으로 올해 책정한 복지예산은 지난해보다 8조원 정도 많은 100조원에 육박한다. 부족한 세수는 새 정부가 구상한 각종 정책이 제대로 빛을 보기도 전에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국세청ㆍ관세청 등 세수를 담당하는 세정당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유다.
취임 이후 서울경제신문과 첫 인터뷰를 가진 백운찬 관세청장이 가장 강조한 것도 바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다. 백 청장은 29일 서울세관 집무실에서 5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경제침체의 장기화로 목표한 세수를 많이 걷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나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차단 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정당국이 올해 걷어야 할 국세는 모두 216조4,000억원. 이 가운데 관세청이 담당할 세수는 69조3,000억원에 이른다. 백 청장은 "관세청의 몫이 더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세관 분야의 지하경제가 47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를 차단하고 불법 외환거래 등을 집중 단속해도 연간 2조원 이상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취임 2주가 채 안 됐지만 세제실장은 물론 관세정책담당관까지 두루 거쳤던 그는 "관세청의 업무범위가 상당히 넓다. 단순하게 관세를 걷는 수준에 그친다고 보면 그건 오산"이라고 말했다. "외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불량 먹거리나 불법 약 등의 밀수를 관세청이 차단하지 못하면 국민생활의 안전이 위협 받게 됩니다. 관세청이 뚫리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백 청장은 "세금을 걷는 것부터 관세행정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 넓게는 관세국경 관리, 관세외교 등이 모두 관세청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세수확보는 물론 시장질서 교란 차단
관세청의 업무에 워낙 해박해 하고 싶은 게 참으로 많은 백 청장이 그래도 1순위로 꼽은 것은 세수확보다. 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부터 꺼냈다.
대외거래와 관련된 지하경제는 47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세청은 추산한다. 불법 외환거래가 22조원으로 가장 많고 밀수 18조원, 탈세가 7조원가량이다. 백 청장은 "관세청의 지하경제 양성화도 결국 이들 세 가지 부문을 집중해서 볼 것"이라면서 "그런 일환에서 27일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단'도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백 청장은 그렇다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단순하게 세수를 더 늘리는데 국한해서 볼 사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 A가 실제는 100만원인데 특수관계로 인해 50만원으로 신고합니다. 일단 관세를 적게 내겠지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들어온 제품보다 관세를 절반 적게 내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생깁니다. 이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겁니다." 결국 피해는 관련 산업이 입게 되고 정부에는 세수결손, 기업에는 매출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얘기다.
"연간 58억달러 현금 반출 신고…적법성 확인은 곤란"…FIU 정보 활용 땐 연간 5조원의 불법 외환거래 추가 검거
문제는 대외거래 부문의 지하경제는 갈수록 은밀하고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 청장은 "관세 부문의 지하경제는 정말 은밀하다. 갈수록 진화해 밀수는 물론 불법 외환거래 등은 단속을 많이 하는데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도 정말 지능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관세조사 인력도 38개 팀 223명에서 73개 팀 431명으로 대폭 늘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불법거래를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하경제 부문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불법 외환거래가 특히 그렇다. "2012년만 봐도 관세청에 신고된 현금 휴대 반출입 금액은 연간 58억달러에 달합니다. 하지만 적법성 확인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고액현금자료를 활용해 현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한 시점입니다." 관세청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백 청장은 "FIU로부터 제공 받는 정보를 토대로 한 관세범칙 조사의 검거율은 37%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해 FIU에 보고된 고액금융자료 가운데 관세청에 제공된 것은 0.02%인 2,003건에 불과했다"면서 "역으로 관세청이 FIU의 정보만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연간 관세포탈 세액은 3,500억원, 불법 외환거래는 5조원가량 더 검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해 국세청에 통보하면 상당 규모의 내국세 추징도 가능한데 현재 올해 초 국세청에 통보한 업체에 대해 각각 500억원, 300억원의 세금추징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장선상에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관세청이 관리하고 있는 62개 조세피난처와 무역 관련 외환송금 규모는 1,856억달러다. 반면 수입규모는 404억달러로 그 차이가 1,452억달러에 달한다. "물론 이런 차이가 합법적인 자본거래나 중계무역 등의 거래로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산도피나 비자금 조성 등 불법 외환거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는 만큼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100% 의심할 수 없지만 미심쩍은 거래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관세청은 조세피난처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 2010~2012년 248건, 2조8,000억원가량을 적발했다. 해외투자나 무역거래를 가장한 자금지급이나 자금세탁이 주를 이뤘다. 백 청장은 "더욱이 영국 NGO(조세정의네트워크)의 한 보고서를 보면 1970~2010년 우리나라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금이 매년 22조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떠나 상당한 자금의 이동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3년 탈루세액 추징금액, 다국적기업 70%차지…위험도 높아져"
백 청장이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다국적기업들이다. 수입실적이 있는 다국적기업이 약 5,000개인데 지난해 기준의 수입비중은 31%, 관세청 세수의 49%를 차지한다. 실제로 B위스키업체는 해외 본사와 이윤 없는 거래로 수입가격을 제조원가 수준으로 낮춰 신고한 뒤 국내에서 거둔 이익을 배당금 등의 명목으로 유출했다가 4,000억여원을 관세청으로부터 추징당하기도 했다.
"최근 3년간 탈루세액 추징금액 가운데 다국적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하는데 더 큰 문제는 탈루위험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세청도 다국적기업의 지능적인 조세탈루에 내심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백 청장은 "대응하기 위해 서울ㆍ부산에 '특수거래심사팀' 2곳을 설치했고 수입가격 동향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운영과 조사인력 확대 등의 조치를 취했다"면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연간 6,000억원가량의 세수증세를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원산지 증명 프로그램 등 중소기업 지원"
관세업무에 워낙 밝다 보니 백 청장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도 상당히 공을 들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며칠 전에도 충주 세관에 다녀왔습니다. 일반 기업체를 방문해 애로사항 등을 들어봤는데 우리가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우려사항을 알지 못하고 있었어요. 무역 과정에서 원산지 증명 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것인데요. 결국 세관이 직접 현장에 나가서 기업들에 1대1 컨설팅을 지원하고 원산지 증명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지원해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체결하면서 관세 등의 부담이 낮아져 중소기업들의 수출도 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품의 원산지 증명이다. 부품이나 원재료를 외국에서 수입해와 사용했는데 그 비중이 제한선을 넘어설 경우에는 FTA에 따른 관세특혜를 받을 수 없다. 더욱이 관세혜택을 본 뒤 수출을 했는데 나중에 원산지 증명을 하지 못할 경우 되레 과징금 폭탄도 맞을 수 있다. 원산지 증명 프로그램을 만들고 중소기업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경관리 갈수록 중요…관세청은 국민 먹거리 안전의 보루"…"관세청 역할 갈수록 많아져…현재의 인력으로 업무부담은 있어"
백 청장은 세입기관으로서의 관세청 기능 이외에 국민건강 보호의 보루라는 점도 강조했다. 불법 무기류, 마약, 불량식품 유입 등 모두 관세청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임하자마자 인천세관에 갔어요. 비아그라를 엄청 들여오고 있는데 그런 것을 관세청이 적발하지 못하면 바로 국내에 풀립니다.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하지만 인력이나 장비 측면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FTA 등의 확대로 갈수록 국경은 넓어지는데 국경수비대가 사람도 부족하고 좋은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비롯해 국경무역도 관리하고 FTA의 원산지 증명이나 분쟁 해결에도 도움을 주는 등 할 일은 갈수록 넘치는데 문제는 인력이다.
관세청의 인력은 4,550명으로 1993년에 비해 5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백 청장은 "관세청은 제복을 입는 조직이다. 규격화돼 있고 원칙이 뚜렷하다는 점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이라면서 "국세의 30%를 담당하고 업무범위가 갈수록 넓어지는데 아무래도 현재의 인력으로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백 청장은 인력을 무조건 늘려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나타냈다. "우리 기업들이 FTA를 제대로 활용하고 분쟁이 생기면 도와줘야 하는 게 이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남미ㆍ인도ㆍ러시아로부터 수입도 많이 되고 무역분쟁도 늘었는데 우리 관세 공무원이 없어요. 기업들이 우리더러 많이 와달라 하는데 그런 분야에서 보강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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