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겼다. 서울 촌놈인 나로서는 아직도 제주도 여행이 어렸을 때 소풍 가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는 일이다. 비행기를 짧게 타고도 서울과는 다른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시간 비행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의 제주도 여행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각종 테마박물관이 많아 즐거움이 더욱 컸다. 일요일 오후라서 한가할 것이라 생각하고 몇 군데 테마 박물관을 들렀는데 의외로 관람객들이 많아 놀랐다. 몇몇 테마 박물관들은 처음 보는 희한하고 기발한 콘텐츠라서 관람할 때는 재미있었지만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았다.
제주도 관광협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1,000만 관광객 시대를 열었고 중국인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그들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육박한다고 한다.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제주도를 보면서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니스 출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도 기억이 남는 것은 아름다운 니스 해변과 가슴을 드러내놓고 일광욕하는 여인들, 그리고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이었다. 휴양지에서 보는 대가들의 미술관은 또 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마티스는 1918년부터 54년까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니스에 살았고 작품을 니스시에 기증했으며 이 작품을 기초로 마티스 미술관이 설립됐다. 샤갈 미술관 또한 작가가 생전에 가증한 성서를 소재로 한 17점의 작품이 기초가 됐으며 작가 사후 상속세 대신 받은 작품들이 더해졌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스위스 바젤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으로 유명한 바이엘러 미술관의 소장품은 약 200점 정도로 다른 미술관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 소장품들은 세계적인 화상인 바이엘러가 모은 것이다. 작품이 팔릴 때마다 새로운 작품 두 점을 산다는 원칙과 작품의 수준을 추구한 끝에 이뤄낸 소장품 컬렉션이라고 한다.
그가 살아 생전에 운영했던 갤러리는 전세계의 콜렉터ㆍ화상ㆍ미술관 큐레이터가 꼭 방문해야 되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건물 자체는 낡고 허름하다. 그의 사무실에 올라갈 때 삐걱대던 나무계단 소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다. 그렇다. 이게 바로 콘텐츠의 힘이다.
멋들어진 높은 빌딩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감동과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를 주는 것은 바로 콘텐츠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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