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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강원도 고성 거진항에는 들어오는 배마다 명태가 가득했다. 전국 명태 생산량의 70%가 이곳에서 나던 시절이다. 하지만 치어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조업형태에 바다 수온까지 올라가며, 이제는 조업을 나가봐야 기름·그물값 뽑기도 어렵게 됐다. 그나마 러시아 해역에서 한국 몫으로 할당된 4만여 톤이 있지만, 갈수록 할당쿼터 가격은 높아지고 어획량은 줄어 조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게다가 가격은 전성기의 50~100배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 명태의 다른 이름은 '왕눈폴락대구'다.
1998년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지만 절판된 마크 쿨란스키의 명저 '대구'가 복간됐다. 문학작품도 아니고 17년 전 책이면 구문(舊聞)에 의미 없는 옛날 수치만 가득한 건 아닐까. 하지만 바이킹의 대이동이 있었던 8세기에서 1,000여 년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 대구의 일대기를 풀어낸 이 책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특히 출간 당시 '상업적 멸종' 선고를 받은 대구는 물론, 다른 어종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저자는 극작가, 어부, 항만 잡부, 법률가 보조원, 요리·제빵사 등 다양한 이력을 거친 현직 저널리스트 겸 작가. 이 책은 어부 집안 출신으로 대구잡이 저인망 어선에 승선한 바 있는 저자가 '시카고트리뷴'의 카리브해 특파원으로 7년간 밀착 취재해 집대성한 저술이다. '세계의 역사와 지도는 대구 어장을 따라 변화해왔다'는 그의 주장은 1997년 미국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주로 언급되는 대구는 '대서양대구'. 워낙 개체 수가 많은데다 몸집이 커 살이 많고 맛은 담백해 유럽인의 주요 식량원 중 하나로 각광 받아 왔다.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장기보관이 가능한 절인 대구 덕분에 오랜 항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이킹의 이동 경로는 대구의 서식범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구의 덕을 본 것은 바이킹뿐만이 아니었다. 본토 유럽인인 바스크인, 종교적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에 도착한 영국 청교도들에게도 엄청난 이익을 안겨줬다. 18세기 미국 독립혁명의 발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당밀과 차에 대한 세금만이 아닌, 대구 무역을 제한하는 법 때문이기도 했다. 또 아이슬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경쟁국의 선박이 군대에 징발된 사이 대구조업을 통해 불과 한 세대 만에 식민지에서 현대국가로 거듭나는 밑천을 모았다. 이후 1958~1975년 아이슬란드 해에서의 대구 어업권을 두고 영국과 3차례의 '대구 전쟁' 끝에 200마일 영해 승인을 얻어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19세기 어업의 현대화 속에 증기동력 트롤선, 전개판 트롤망을 넘어 저인망 어선에 즉시 냉동보관까지 가능한 선박들이 등장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캐나다는 1992년 그랜드뱅크스에서의 대구 조업을 금지하고, 미국은 조지스뱅크 일부에서 마찬가지 조치를 내린다. 어두운 전망은 대구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소비하는 물고기 60%는 사실상 멸종상태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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