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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국 사회가 잊고 있던 가치들을 새삼 일깨우는 기회였다. 그가 전하는 깨우침은 종교 교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인류 삶의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었기에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 자석 같은 흡인력을 발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한경쟁과 무한성장을 신조로 하는 신자유주의로 몰인간화하는 현 사회구조에 경종을 울렸다. 지난 수십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변화와 개혁의 과제들을 진정성 있게 되짚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황이 다양한 자리에서 지적한 대한민국 사회의 이슈들을 단순한 국민적 관심을 넘어 변화와 개혁을 이끄는 추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를 'POPE'의 이니셜인 △교황 리더십 △극복과제 △한반도 평화 △공감으로 정리해본다.
◇P:Pope Leadership(교황 리더십)=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의지를 몸소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리더십과 대중이 원한다면 의전 절차나 격식을 벗어던진 채 현장과 호흡을 공유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며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빈자(貧者)의 성자'를 자청해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지은 그의 행보는 낮은 곳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졌다. 소형차인 기아차 '쏘울'을 교황의 차로 지정한 것이나 청와대에서 내준 전용 헬기를 마다하고 KTX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것 등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말한 바를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환영 인파에서 아기를 발견할 때면 주저 없이 차를 멈춰 안고 입을 맞춰준 것은 물론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서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30분간 원고 없이 이탈리아어로 즉흥연설을 하기도 했다. 의전팀은 당황했겠지만 대중은 그의 소통 의지에 열광했다. 또한 즉위 직후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교황의 개혁 의지는 우리 위정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지난 6월 마피아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마피아 파문을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관피아' 척결을 과제로 둔 우리에게 타격과 위기를 감수하고서라도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만 개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O:Overcome(극복과제)=교황은 경제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등 한국 경제가 극복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경제지원을 강조해왔던 교황은 15일 대전에서 집전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을 극복하라고 얘기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 모델 또한 극복할 과제로 지적한 교황은 그 해결 방안으로 연대와 공공선을 제시했다. 또한 '88만원 세대'이자 '3포 세대'로 풀 죽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교황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며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교황은 이에 대해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P:Peace(한반도 평화)=프란치스코 교황은 도착 첫날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얘기했고 이를 위해 화해와 용서를 당부했다. 14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이 함께한 청와대 연설에서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경종을 울렸다. 특히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남측은 핵 개발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북측은 한미 군사훈련을 그만두라고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한 채 대결과 불안한 휴전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양측의 행태에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명분을 내세워 대결을 자초하지 말고 먼저 대화하고 교류하면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공감지대를 만들고 이어서 평화와 화해가 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E:Empathy(공감)=공감에서 비롯된 포용과 이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을 만났고 그들이 전한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또 '세월호 십자가'는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했으며 유가족의 요청에 이례적인 '단독세례'도 줬다. 유가족에게 친필편지도 전달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된 18일 명동성당 미사에서는 입당 후 맨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손잡고 안아주며 평생의 한(恨)을 위안했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면서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고 명동성당에 위안부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분쟁 및 용산 참사 주민 등을 초청해 한국 사회가 '공감'해야 할 이슈들을 반영했다. 또한 마지막 날 행보로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와 별도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종교와 이념, 민족과 사상을 초월한 포용력이 중요한 것임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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