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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3차 양적완화(QE3) 발표와 관련해 그 자체보다 고용시장이 확실히 개선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명확히 밝힌 점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FRB가 특정한 경제적 목표에 통화정책을 연동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13일(현지시간) FRB가 내놓은 월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매입, 오는 2015년 중반까지 제로 수준(0~0.25%)의 기준금리 연장 등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수준이다.
FRB는 금융위기 이후 2009년 3월 공식 시작돼 2010년 3월에 끝난 1차 양적완화(1조7,000억달러), 2010년 10월에서 지난해 6월까지의 2차 양적완화(6,000억달러) 등을 통해 2조3,000억달러를 풀었으며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장기국채를 사고 단기국채를 매각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종 규모와 시기를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QE3의 가장 큰 특징이다. 월간 매입규모는 400억달러로 1차 1,000억달러, 2차 750억달러에 비해 작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문은 "고용시장 전망이 실질적으로 개선된다는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면 MBS를 추가 매입하고 다른 정책수단들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올해 말 종료되면 국채 매입을 추가적으로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줄리아 코로나도 BNP파리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발표는 FOMC 정책의 획기적 변화"라며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매우 공격적인 약속"이라고 평가했다.
위기 이후 미국의 고용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장기실업을 양산함으로써 경제 전반의 회복세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최근 여러 차례 고용 문제가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고 강조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경기침체 동안 8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절반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높은 실업률은 수백만 명에게 어려움을 주고 기술과 재능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금리를 더욱 낮추면 기업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경제회복을 가속화시키고 이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국채 대신 MBS를 우선 사들이는 것은 미국 주택시장의 회복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FRB의 파격적인 통화정책이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성장률은 2%에 머물고 있으며 실업률은 43개월째 8%를 웃돌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재정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FRB의 통화정책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5,000억달러의 추가 채권 매입이 이뤄지더라도 1년 동안 실업률은 0.1% 떨어지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나왔다. 버냉키 의장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채권 매입 프로그램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FRB는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지프 트레비사니 월드와이드마켓 수석시장스트래지스트는 "이번 조치는 심리적 차원의 조치에 불과하다"며 "경제회복은 FRB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 등 전세계 증시나 상품시장은 '루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증시 격언을 무색하게 랠리를 나타냈다. 적어도 다음 FOMC가 열릴 때까지는 우호적인 시장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또 투기자본의 이동을 촉진시켜 금ㆍ석유 등의 원자재 가격을 부추길 공산도 크다. 하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가 재부각된다면 이러한 시장의 랠리도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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