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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11월 18일] 내 마음의 책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한다. 오랜 시간 손에서 놓지 않은 '김수영 전집' 1권이다. 대학교 입학 후는 혼란과 혼돈의 시간이었다. 지난 1982년. 군사정권의 서슬이 온 나라를 뒤덮던 시절이었다. 처음 접한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마법과도 같이 내 마음을 빼앗았고 대학생활 내내 나는 김수영과 함께 살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책도 바로 그때 구입한 그대로다. 탁월한 평론가 김현은 '김수영은 자유를 다루되 자유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고 시적 이상으로 생각하며,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 말 그대로다. 그는 자유를 목청 높여 부르짖지 않았지만 남루하고 비천한 일상을 통해 자유의 부재를 드러내고 누구보다도 깊고 애절하게 갈망했다. 나이 40을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김수영이 생전에 쓴 시를 순서대로 모아놓은 이 책을 능가하는 시나 시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김수영 시인이 갈망했던 '자유'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서구적 개념의 자유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나 마침내 시인 스스로 다다른 긍정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김수영의 자유는 군사정권으로부터의 자유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질서로부터의 도피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현실의 수사를 벗어나 끊임없는 자아의 추구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이상의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김수영을 저항시인으로 보는 견해를 긍정하면서도 거기에 머무르는 것은 김수영의 진면목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이 매혹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자유추구가 현실의 부정이나 도피를 수반하지 않는 것, 자신이 처한 처지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는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김수영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시인들처럼 서구의 모더니티를 숭앙하지도,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려 초현실을 추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힘든 현실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사는 농부와도 같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닌 점이 당대를 뛰어넘는 그의 천재성이다. 모름지기 이상을 추구하되 자신의 현실을 사랑하고 헛된 남의 것들을 바라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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