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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부모 조기퇴직 때문에… 막내는 서럽다

■ 경제적 불이익 받는 막내<br>자녀에 돈 가장 많이들 때 퇴직<br>유학 포기 등 상대적 불이익<br>"형 결혼 땐 하객 줄섰는데…"<br>결혼자금도 턱없이 부족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 시기에 접어들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퇴장이 인생 2막을 여는 희망적인 장면이기보다는 걱정과 고민 등 우울한 장면이 더 많아 안타까운 상황이다. 가족을 위해 생애 대부분을 희생한 가장은 자신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은퇴 이후에도 자녀 부양의 부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기 퇴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는 정년을 맞았더라도 라이프사이클상 자녀들은 대학생이거나 사회에 갓 진출한 초년생들이 많아 자녀의 취업, 결혼 등 목돈 들어갈 일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가장의 은퇴는 본인에게 가장 힘겹고 고민스러운 일이지만 가족 구성원의 삶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구조조정의 가속화 등으로 가장의 은퇴 시기가 전반적으로 앞당겨지면서 장남, 장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집안의 막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각하게 느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 과정과 궤적을 함께 하는 50~60대 부모들은 풍요로운 물질적 안정에 힘입어 자녀에게 많은 투자를 했으며 이전 세대에 비해 사교육이 만연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며 "그러나 이전 세대보다 조기 퇴직이 가시화되면서 막내 자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지원할 여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막내들은 보통 출생 순위에 따른 특성상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하는 속성이 강한 편인데 성장하면서 부모의 은퇴로 인해 형제들에 비해 혜택을 덜 받는 데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오히려 가정에 대한 정확한 현실 감각을 갖게 함으로써 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방지하는 한편 부모들은 막내들에게 물질적 지원은 아니더라도 심리적ㆍ정신적으로 힘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곽 교수는 조언했다. ◇조기 퇴직 시대, 막내들은 기댈 곳이 없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자신의 퇴직 나이를 50대 이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현재 직장에서 예상하는 자신의 정년은 평균 46.4세로 나타났다. 결국 상당수 직장인들이 자녀가 중ㆍ고등학교, 빨라도 대학교에 다니며 경제적 지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오히려 경제 활동에서 물러나야 하는 셈이다. 요행히 정년(평균 53세) 무렵까지 일한다 하더라도 막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자녀들에게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나이인 50대 가장의 소득은 40대 후반보다 못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가구주 연령대별 월 평균 소득은 50대가 376만원으로 40대의 381만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벤트 대행사에 다니는 이승호(30ㆍ이하 가명) 대리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다가 예상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자 걱정이 많아졌다. 자신보다 나이가 8살, 10살 많은 누나 2명이 있는 전형적인 막내인 이 대리는 누나들이 장기간 유학 생활을 한 후 결혼한 데 비해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다. 이 대리는 "또래 친구들보다 10살 가량 많은 부모님 연세를 생각하면 집안에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늘 갖고 있었지만 누나들이 결혼할 때와 달리 내가 결혼하려고 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집안 사정에 부모님께 집을 팔아서라도 도움을 달라고 화를 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아버지 퇴직 후 몇 년 지나 결혼하게 되는 막내들은 하객이나 축의금 면에서도 형제 자매들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다. 지난 달 화촉을 밝힌 정병선(32) 씨는 결혼식 당일 신랑 측 하객이 너무 적어 신부 보기가 창피했다. 대학 교수인 장인에게는 찾아오는 하객이 수백 명에 달해 피로연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지만 대기업 임원으로 4년 전 퇴직한 정 씨의 아버지는 하객이 눈에 띄게 적었던 것. 정 씨는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이 자리를 채워줬지만 하객 수나 축의금만 봐도 신부 쪽에 비해 기운 듯한 인상이 강해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며 "형이 결혼할 땐 아버지 퇴직 전이라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내 결혼식은 썰렁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일산에 사는 김진희(34) 씨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3자매 중 막내인 김 씨는 언니들과 6살 이상 터울이 나는데 언니 둘은 일찍 시집을 가고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를 도왔다. 그러나 최근 경기 불황으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를 닫게 되면서 부모님이 그간 모아둔 자금은 노후자금으로 쓰도록 하고 나니 정작 본인은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다 할 직장 경력이나 자격증이 없는 김 씨는 부모님께 기댈 수도 없고 시집간 언니들도 살림하느라 여유가 없는 상황이니 당장 경제 생활은 물론 앞으로 결혼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가장 절실한 학업 도중에 불이익을 받은 경우 막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한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최현우(32) 씨는 법대 졸업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샐러리맨으로 전환한 케이스. 3명의 형들 모두 법대를 나와 검사나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최 씨는 고시 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심리적 부담이 생겨 자연스럽게 직장에 입사했다. 최 씨는 "내가 공부를 더 잘 했으면 가정 사정쯤이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만 아버지 퇴직에 따른 부담이 고시 공부를 지속하는 데 걸림돌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취업 준비생 서우석(29) 씨는 아버지가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형과 누나는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누나와도 6살 터울인 자신은 2년 전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워한다. 특히 취업을 위해 스펙이 중요한 요즘 같은 시기에 학원비와 자격증 취득을 위한 비용도 벅찬데 형과 누나가 다녀왔던 장기 해외 연수는 꿈도 못 꿀 처지다. 서 씨는 "형이 취직했을 때 아버지가 기뻐하면서 자동차를 뽑아줬던 기억이 난다"며 "나는 자동차 선물은커녕 오히려 취직하자마자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드려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모와 함께 할 시간이 적은 막내의 설움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들은 대부분 부모 나이가 많아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상(喪)도 일찍 겪기 마련이다. 함께 시간이 적은 만큼 부모를 떠나보내고 가슴 속에 맺히는 한도 클 수 밖에 없다는 게 막내들의 하소연이다. 대기업 기획실에서 근무하는 최준혁(33) 씨는 최근 부친상을 당했다. 은퇴 후 몇 년간 암을 앓아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막내 며느리 얼굴도 못 보여드린 게 가장 큰 한이라고 최 씨는 말한다. 최 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 사랑을 많이 자랐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니 어쩔 줄 모르겠다"며 "암 투병을 하면서도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미현(29) 씨는 본인도, 연년생인 언니도 아버지가 마흔이 넘어서 낳은 늦둥이다. 보통 환갑 잔치엔 자녀는 물론 손주까지 참석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정 씨의 경우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환갑을 맞았으며 대학에 다닐 때 아버지가 정년 퇴직해 정작 두 딸이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지 못해 아쉬웠다고 한다. 정 씨는 "어릴 때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부모 자식이 아닌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로 오해할 때가 있어 속상했다"며 "부모님이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니 결혼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심각한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막내에게 자립 요구하는 부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막내이지만 더 이상의 경제적 지원이 어려워진 부모는 마음 속으로 미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자립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여파로 회사를 나온 심현석(54) 씨는 지금도 막내 아들을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퇴직 당시 고3이었던 막내는 공부도 곧잘 해 명문 사립대에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 부담스러워 결국 아들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중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심 씨는 "누나들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내 아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며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2학년이 되는 올해 군 입대를 선택했다"고 아쉬워했다. 4년 전 국내 중견기업의 전무이사로 명예 퇴직한 이현수(59) 씨는 올해 초 프랑스 유학을 떠나는 막내 딸 정인(25) 씨로부터 각서 한 장을 받아냈다. 각서 내용은 '프랑스 유학 후 최소 5년 이상은 직장에 다니며 월급의 50%를 부모에게 준다'는 것. 불문학을 전공하는 막내 딸의 프랑스 유학을 위해 노후 생활 자금으로 남겨둔 1억원을 털어준 이 씨는 딸과 계약 관계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기로 한 것. 이 씨는 "우선 연금으로 생활하고 딸 아이가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는 대출금 1억원에 대해 일부 상환 받겠다는 것"이라며 "언니들은 조건 없이 미국과 캐나다에 유학을 다녀왔으니 주변에서 너무 야속한 처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노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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