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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현대차 파업과 한국의 진보정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무섭게 달리고 있다. 최하층 계급이 모인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는 온갖 장애를 뚫고 그토록 열망하던 엔진칸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낭만의 열기로 후끈한 혁명이 아니었다.

커티스는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했던 길리엄이 실은 열차의 지배자인 윌포드와 내통했다는 사실, 누가 엔진칸을 차지하든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나뉘는 권력구조는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실과 마주한 뒤 일생의 목표가 허물어지는 듯한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시스템 자체가 파괴되지 않는 한 결코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이 영화의 진짜 엔진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20일 이후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현대차 파업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다. 동시에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 민주당의 은수미ㆍ한정애 의원 등 국내 노동계를 대표하는 진보 정치인들도 생각났다.

노동자의 권리 수호를 위해서라면 쌍수를 들고 나서는 이들이지만 어쩐 일인지 현대차 파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성명'도 매서운 '사측규탄'도 들리지 않는다. 일언반구조차 없다.

왜일까.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은 진보 정치인으로 일관되게 지켜온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기막힌 요구가 쏟아지더라도 노조에 손가락질하며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지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설국열차' 속 먼 미래가 아니듯 선과 악의 또렷한 경계가 존재하던 1970~1980년대도 아니다.

진보 정치인이라고 해서 '노동자는 선, 사용자는 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진보 정치인이 노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발끈하는 이가 있다면 비난의 화살은 구시대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강성노조의 악습에 부러 눈 감은 바로 그가 감내해야 한다.

불법 파견과 같은 사측의 범법(犯法)에 날 선 칼끝을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의 비상식적인 요구와 파업에는 '아니올시다'를 외치는 용기가 지금 대한민국의 진보 정치인에게 필요하다.

저 깊은 속마음으로부터 이 용기를 길어 올리지 못한다면 한국 노동계를 대변하는 진보 정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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