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역사에 빛날 갑오년을 만들어나가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지구촌 경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황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성장대열에 합류할 수 있느냐 여부가 올 한해에 달렸다. 주지하듯이 갑오년마다 우리 민족은 큰 시련을 겪어왔다. 특히 120년 전인 갑오년(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 같은 애국·개혁운동에도 불구하고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다른 나라의 싸움터로 바뀌는 상처를 입었다. 60년 전 갑오년(1954년)에는 동족상잔의 후유증으로 굶주리고 가족이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갑오경장과 같은 개혁 실패를 되풀이할 수 없다고 강조했듯이 이제 다시 지난 역사의 아픔을 반복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갑오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열망했던 선진 자유민주국가는 물론 남북통일과 민족의 장래, 심지어 존속 여부조차 기약하기 어렵다.
문제는 할 일은 많은데 올해의 현실이 유별나게 비우호적이라는 점이다. 경제는 물론 국내 정치와 외교에서도 난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당장 경제는 기대 섞인 착각 속에 외화내빈으로 빠져들기 쉬운 구조다. 지난해 모두가 땀 흘린 결과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두고 경기도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과연 지속 가능할지는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는 원화절상 압력으로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간판기업들의 채산성도 나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투자가 살아날 수 있을지, 고용은 언제쯤이나 나아질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처럼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극심한 불경기를 견뎌내는 바탕이었던 정부의 재정도 악화일로다.
대외적으로도 악재에 포위된 형국이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외교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갈등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감정대립으로 자칫 혈맹인 미국과의 관계까지 영향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동맹을 공고하게 다지는 동시에 최대 교역국가인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반된 정책목표간 접합점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핵 개발을 비롯한 군사적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과 다름없다.
국내외의 난제가 산적한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에 들어간다.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에서 집권 2년차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지금까지 역대 정권을 살펴보면 집권 2년차의 성패가 5년 재임기간의 성과를 갈랐다. 보통은 취임 직후의 추진력으로 1년을 지내는 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각계 의견을 받아들여 2년차부터 균형 잡힌 정책과제를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당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개입 논란의 함정에 빠져 불신과 반목의 정치구조가 경제와 사회통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처럼 촛불시위의 벽에 막히지는 않았지만 대립과 강경대치 구도는 본질적으로 똑같다. 지방선거까지 이런 극한대립 구도가 이어진다면 국민은 정치에 더욱 실망할 테고 경제회복도 난망이다.
중대한 역사적 책무를 띠고 있는 이번 정부는 집권 2년차를 촛불의 후유증을 넘는 데 허비했던 전임 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하루바삐 정치권과 갈라진 국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대통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영국의 고질병인 탄광노조의 파업을 잠재운 마거릿 대처 총리의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중요한 만큼 자신을 비난해온 정적마저 국방장관에 앉혀 사회통합은 물론 3연임에 성공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무티(엄마) 리더십'도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말 국회는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으나 극적으로 예산안을 처리하는 타협의 모습을 보였다. 철도파업도 대화창구를 끝없이 모색하려 노력한 국회와 원칙으로 일관하면서도 막판 대화를 수용한 청와대의 결단으로 해를 넘기지 않았다. 세모(歲暮)의 끝자락에서 발현된 상호존중의 정신이 이어진다면 갑오년도 새롭게 설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대 정권 집권 2년차에는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았던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주가도 뛰었다. 올해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욕으로 점철된 갑오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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