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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김재호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조직정비로 성장모멘텀 찾는 잔소리꾼<br>법률시장 개방 파고 전문화로 넘어야죠<br>'잘한다' 정도론 고객 만족못해… 스페셜한 부분까지 끌어내야<br>최강무기 송무 강점 살리고 인재 영입해 자문영역 강화



"뭘 이렇게 자꾸 귀찮게 해."

지난해 1월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변호사로 취임한 김재호 변호사(51ㆍ사법연수원 16기ㆍ사진)가 1년4개월 남짓한 기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김 대표가 취임 이후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이른바 조직 재정비. 채용과 인사 제도를 손봤고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팀을 발족하는 등 조직 개편도 올해 초 단행했다. 사내 젊은 변호사들의 역량 강화를 독려하는 한편 긴장감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가겠다며 분위기 쇄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조직을 바꿔나가려다 보니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죠. 많이 알려졌다시피 바른은 판사 출신들이 세운 로펌이고 지금 내부 구성원 중에도 판사 분들이 많아요. 근데 원래 판사라는 분들이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못 되거든요. '내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귀찮게 한다는 타박을 들을 수밖에요."

1998년 설립된 법무법인 바른은 비슷한 시기, 비슷한 규모로 출범한 로펌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방법론만으로도 괜찮지 않냐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지금 조직 내부를 재정비하는 것이야 말로 법무법인 바른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갖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로펌은 변호사들이 개인 플레이를 할 때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로펌이야 이미 여러 제도가 확립돼 안정화돼 있지만 바른은 아직 조금 취약한 부분이 남았어요. 지금까지야 운 좋게 국내 법률 시장의 팽창에 편승해 함께 성장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쉽지 않죠. 빠르게 성장하던 국내 법률 시장의 추세가 주춤하고 있고 여기다 시장 개방으로 외국 로펌의 공세까지 시작되니까요. 변화에 맞서려면 우선 내부적으로 좀 더 탄탄해져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김 변호사가 바라는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변호사들의 전문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바른의 주력 파트너 대부분은 판검사 업무를 굉장히 오래 하시다 온 분들인데 이 분들의 특징은 바로 '못하는 게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는 말이 되거든요.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무슨 일을 맡겨도 평균치가 높지만 그냥 '잘한다' 정도로는 이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죠. 좀 더 스페셜한 부분까지 끌어내야 하니 '전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인 셈입니다."

바른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결국 로펌은 어떤 인재가 들어오느냐, 어떤 사람을 육성하느냐에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소속 변호사들이 좀 더 일하기 좋은 로펌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김 대표는 특히 여자 변호사들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출산 이후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내변호사 등으로 진로를 바꾸거나 아예 경력 단절을 감안하면서까지 휴직을 감행해야 하는 여자 변호사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다.

"고참 여자 변호사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10여 년의 변호사생활을 무한한 죄책감을 가지고 했다. 집에서는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회사에서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시간적으로 여유를 갖기 힘든 직업이거든요. 하다못해 직장어린이집 개설이라든가 탄력근무제 도입 등을 통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

채용에서는 그야말로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바른에서는 자체적인 채용시험을 본다. 날짜를 정해 필기시험도 보고 법률토론도 해보게끔 한다. 진짜 실력 있는 인재가 학벌이나 인맥을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신참 변호사들이 경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김 대표는 "역량 강화를 위해 함께 잘해보자며 일종의 부흥회(?) 같은 걸 몇 차례 가졌는데 다행히 호응을 잘해줬어요. 사내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 학회나 연구모임이 많아지고 짬짬이 책 쓰는 사람도 나오는 등 활동이 부쩍 눈에 띕니다. 지난해만 해도 우리 변호사들이 4~5개 전문분야에서 책을 써냈어요. 고맙죠."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인터뷰 중 몇 번이고 강조한 말은 '시장 개방에 대비한 준비'였다. 그렇지 않아도 2차 법률시장 개방 시기가 불과 2개월 앞으로 다가오며 시장에서는 여러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내 중소 로펌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생각보다 외국계 로펌의 입지가 약하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는 반론도 제기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어떨까.

"솔직히 모르겠어요.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은 해 본적이 없기에 외국 사례를 가지고 조심스레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변화가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을 계속 훈련시키고 또 훌륭한 사람을 채용하고 하는 식으로 조직을 내실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닥쳐도 대비할 수 있게 말입니다. 다행인 것은 바른이 송무 비중이 80%로 높은데 송무 파트는 아무래도 시장 개방의 여파가 가장 뒤늦게 미치기에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다는 거죠."

그의 말처럼 바른의 강점은 송무에 있다. 앞으로도 송무의 최강자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다만 바른이 송무에 강하다는 인식이 종종 '송무만 강하다'로 해석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표로 취임한 이래 자문에 특출 난 실력을 가진 주요 파트너들을 꾸준히 영입하는 등 자문파트를 계속 보강해가고 있습니다. 법률 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로펌의 본격적인 시장 공략이 시작되면 시장이 요동칠 테고 인재들의 움직임도 가속화될 겁니다. 승부는 그때 나는 겁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히 준비하는 것만이 정답이겠죠."







●김재호 대표는

▲1962년 경북 ▲중앙고ㆍ서울대 법대 졸업 ▲26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6기 수료 ▲서울지법 북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가정법원 판사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 변호사 ▲2003~2004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2007~2009년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 ▲2012년~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의뢰인 기뻐하는 모습 보면 보람 느껴요

"아직도 법정에서 재판관이 일어서서 변론하라고 하면 긴장해서 목소리가 떨릴 정도입니다. 속도 막 쓰린 기분이 들고…."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 김재호 변호사는 유난히 쑥스러워했다. 어떻게 포즈를 잡아야 할지조차 도통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소송변호사.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을 상상했던 기자에게 김 변호사의 이런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학교 다닐 때도 그렇고 판사 시절에도 멀리서 아는 사람이 오는 게 보이면 그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먼저 인사하고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게 저한테는 참 어려웠거든요."

법정에서 많은 방청객 앞에서 변론을 펼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준비를 많이 하는 게 방법이죠. 보통 재판에 앞서 변론 요지서를 써내는데 저는 그걸 구어체로 바꾼 문서를 다시 작성해 미리 읽고 들어갑니다. 그래도 목소리가 떨리는 경우가 많은데 방청하시는 분들은 제가 감정이 격해져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만났던 의뢰인과의 재판 중 에피소드를 말하는 그는 신이나 보였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이기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는 김 대표. 그 말처럼 그의 승소 이력은 화려했다.

일례로 그는 무기중개상 조풍언씨를 변론했는데 조씨는 전직 대통령과 대기업 오너가 연루된 대형 권력형 비리의 핵심인물로 떠올라 대검 중수부로부터 무려 15년을 구형 받았지만 김 대표의 활약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청와대 실세로 불렸던 변양균씨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낸 것도 김 대표의 노력이 바탕이 됐다.

신정아씨와의 인연은 특히 재미 있다. 당초 변씨의 변론을 맡으며 알게 된 신씨가 자신도 변론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충돌되는 사건을 둘 다 맡을 수 없기에 당시는 거절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신씨가 추후 성곡미술관ㆍ문화일보 등과의 민사소송 사건을 진행하며 다시 도움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거절할 수가 없어 의뢰를 맡았다. 다행히 두 사건 모두 괜찮은 결과를 거뒀고 신씨는 자서전 '4001'에서 김 변호사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의뢰인을 깊이 생각하고 도와주는 훌륭한 변호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김 대표는 "막상 형사사건에서 제가 변론한 사람은 변양균씨인데 자서전이 유명세를 타다 보니 다들 제가 신정아씨를 변론한 걸로 알더라구요. 두 분과는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바른의 대표변호사로서의 요즘 업무에는 아직 별로 재미를 못 느끼겠다고 한다.

학창 시절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언제든 도울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되자며 선택한 사법고시의 길, 12년간 성실히 수행했던 판사로서의 삶, 다들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하필 외환위기(IMF)에 법원을 나와 로펌을 개업한 일…. 무엇 하나 후회 없이 만족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그지만 대표변호사로의 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한다.

"소송 업무는 건마다 보상이 있어요. 이겼다는 느낌도 좋고, 의뢰인이 기뻐한다면 그것도 다시 내 기쁨이 돼 힘들었던 기억이 상쇄가 되는데 대표변호사는 위로 받을 곳이 별로 없네요. 또 대표의 업무는 의도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인재 채용을 위해 10명을 접촉해도 1~2명 겨우 되면 성공이잖아요. 소송할 때 10건 맡으면 8~9건은 이기던 사람인데 만족이 안 돼요."

"대표로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나간다는 게 쉽지는 않네요. 하지만 대표 일이라는 게 제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좀 더 노력해봐야죠. 익숙해지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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