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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잃은 1기 신도시] 낡고 물새는 노후 주거지 전락… 유일한 비상구는 리모델링

아파트 준공한지 20여년 지나 배관·마감재 등 곳곳서 수리중<br>대부분 중·고층 단지로 구성 용적률 높아 재건축 실익없어



명품 주거지로 자리매김했던 1기 신도시가 길을 잃었다.

1991년 첫 입주가 시작돼 2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파트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난항을 겪으면서 전국에서 주택 경기 침체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1기 신도시 주변에 대체 주거지 공급이 이어지면서 명품 주거지로서의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황이다.

◇리모델링만 바라보는 1기 신도시=분당 서현동 K중개업소 관계자는 "준공된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수도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층간 소음도 심각하다"며 "1,000만~2,000만원을 들여 내부수리를 하지 않고는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전했다.

현재 1기 신도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파트가 점차 노후화되고 있지만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파트를 준공한 지 20년이 지나 아직은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서울 강남권이나 경기 과천 주공단지들과 같이 저층단지가 아닌 대부분 중층단지로 이뤄져 재건축을 통해 높은 용적률을 적용 받기도 힘들다.

지난해 정부가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아직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지 않은 주택의 경우 주민 10분의1의 동의를 받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재건축 안전진단을 요청,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도록 했지만 중대한 기능적ㆍ구조적 결함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됐기 때문에 1기 신도시 아파트에 직접 적용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에 따라 1기 신도시 조합들은 아파트 리모델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리모델링이 활성화돼야 노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침체된 주택 거래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형욱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연합회장은 "국내 건축물은 1988년부터 내진설계가 적용됐으나 1기 신도시를 건설할 당시에는 리히터 3~4 규모의 지진을 기준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현재 기준인 리히터 5.5~6에 비해 취약하다"며 "리모델링을 통해 노후아파트 내진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재 없는 1기 신도시, 침체 직격탄=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호재도 없다 보니 1기 신도시는 주택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분당의 경우 2011년 10월 정자역과 강남역을 잇는 신분당선 1단계 구간이 개통됐지만 노후화된 주거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1기 신도시는 리모델링 수직증축을 하지 않으면 가격 상승 요인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1기 신도시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2007년 1월에 비해 ▦분당 -37.35% ▦일산 -31.39% ▦평촌 -26.42% ▦산본 -13.93% ▦중동-3.64% 등으로 급락했다.

이에 반해 전셋값은 매년 급등해 같은 기간 ▦분당 27.48% ▦일산 26.37% ▦평촌 23.37% ▦산본 23.76% ▦중동 34.06% 등으로 상승했다.

집값은 급락하고 있지만 전셋값은 연일 상승하다 보니 결국 2년마다 수천만원씩 상승하는 재계약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인근 대체주거지로 이동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파주운정 D중개업소 관계자는 "이곳 두산위브 전용면적 84㎡형 전셋값이 1억5,000만~1억6,000만원으로 인근 일산의 같은 평형보다 3,000만~4,000만원 정도 더 저렴하다"며 "일산 전셋값이 워낙 가파르게 오른 탓에 교통은 좀 불편하더라도 새 아파트가 있는 이곳을 찾는 신혼부부가 많다"고 말했다.

용인 수지구 상현동 인근 G 중개업소 관계자는 "광교 상록자이 전용 84㎡의 전세가는 2억2,000만~2억3,000만원선으로 분당 구미동 일대의 같은 평형 전셋값보다 5,000만~6,000만원 정도 저렴하다"며 "분당의 비싼 전셋값을 못 이기고 이동하는 사람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도시ㆍ단지별 계획 수립해야=전문가들은 정부가 1기 신도시 노후 문제를 해결할 만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는 공동주택 재건축에 대한 안전기준만 수립돼 있기 때문에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 하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일관된 리모델링 사업 진행과 안전성 제고를 위해 안전진단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재건축에 준해 안전성을 진단하고 있기 때문에 리모델링에 적합한 안전진단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차장은 "재건축의 경우에도 안전진단을 받고 단지별로 나눠 등급을 구분한다"며 "만일 수직증축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만큼 각 신도시와 단지 특성에 맞는 맞춤형 안전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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