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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를 넘어라] <2부> 글로벌 위기 현장을 가다 ④ 인도

물가 치솟고 경기 얼어붙어… "미래 불투명" 기업 투자도 급제동

지난 달 22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한 남자가 이동용 물탱크를 이용해 목욕을 하고 있다. 취약한 인프라와 기후 탓에 만성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에서는 곳곳에 이동용 물탱크가 비치돼 있다. /뭄바이=고병기기자


여유 있는 중산층까지 지갑 닫아… 70% 폭탄세일 내걸어도 가게 한산…
택시 파업 등 국민 불만만 곳곳 분출

무분별한 규제·부패·포퓰리즘 등 정치가 되레 성장 잠재력 갉아먹어…
총선 앞둬 상황 더 안좋아질 가능성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찾은 인도 뭄바이 최대의 쇼핑몰인 피닉스몰은 몬순 계절에 맞춰 1년에 한 번 있는 최대 세일기간(몬순 세일)의 주말인데도 한산했다. 디젤ㆍ자라 등 유명 브랜드들이 너나없이 최대 70%의 가격할인을 내걸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쇼핑객의 모습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가파르게 꺾이고 있는 인도 경제와 치솟는 생활비에 치여 인도에서 그나마 여유가 있던 중산층이 지갑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외국계 선박회사에 다니는 산제이 샤르마(39)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내와 함께 10년째 뭄바이에 살고 있는 그는 올해가 지난 2008년 경제위기 당시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앞날이 안 보이는 경제상황과 연일 뛰어오르는 물가부담을 견뎌내기 위해 샤르마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씀씀이를 줄이는 것뿐이다. 그는 "최근 6개월 사이 지출을 50%나 줄였다"며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경기가 나빠진 탓에 임금은 그대로라 옷을 사거나 여가생활을 하는 데 드는 불필요한 비용까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도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둔화하고 있는 인도 경제가 반등하기까지는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치솟는 기름값은 물가에 커다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인도는 원유 수요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 등의 여파로 기름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샤르마씨는 얼마 전부터는 아예 차를 집에 두고 다니고 있지만 뭄바이의 대중교통 수단이 취약하다 보니 택시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뭄바이의 택시 기본요금은 지난 1년 사이 33%나 올랐다.

고물가에 짓눌린 국민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뭄바이에서는 올해 들어 4월과 5월에 택시 기사들이 기본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두 차례나 파업을 벌였으며 지난달 21일에는 퇴근시간을 앞둔 오후3시께 450여명의 열차 운전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해 교통대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도 당국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안정'에 두고 있다.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은 급격한 경기둔화에도 4월 이후 기준금리를 동결시키고 있다. 지난달 통화정책회의를 일주일 앞둔 23일 뭄바이 RBI 본사에서 만난 B M 미스라 경제&정책 연구분야 책임자는 "RBI는 물가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성장은 그 다음"이라며 "물가가 4~6% 수준을 유지하면 성장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RBI는 기준금리를 8.0%로 유지했다.

하지만 물가상승 압력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의 7월 물가상승률은 6.87%로 전달의 7.25%에 비해 완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서는 인도 정부가 물가를 핑계로 사실상 경제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물가가 잡히지 않는 와중에 경기가 급속도로 둔화하면서 경제의 동력이 되는 기업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인도 경제지 비즈니스투데이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ㆍ4분기 기업신뢰지수(BCI)는 49.3을 기록해 집계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 지난해 1ㆍ4분기 BCI는 74.8이었다. 인도 경제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면서 대기업들의 투자에 제동이 걸렸다. 인도 3위의 재벌기업인 아디티야비를라그룹의 아지트 라나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모든 사업계획을 보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기둔화 속 고물가에 신음하는 인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정부당국은 사실상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정계에 만연한 부패와 정책 번복, 유권자의 인기를 노린 시장규제 등이 인도 경제에 대한 국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3월 인도 세무당국은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이 인도 통신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조세의무를 회피한 것에 과세하기 위해 1962년부터의 자본이득에 대해 소급 과세하기로 하면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인도 이탈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인도 최대의 신용평가사인 크리슬의 비디아 마함바레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외부에서 제기되는 인도 경제에 대한 우려는 정부를 불신하기 때문"이라며 "인도는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해 아직 경제성장률도 높은 편이고 큰 내수시장과 높은 저축률 등 여러 가지 강점이 있지만 정부가 투자가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낮아진 경제성장률과 루피화 가치 하락 등은 인도의 잠재력을 고려할 때 일시적인 문제일 뿐 인도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도 정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사정이 한층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2014년 9~10월께로 예정된 인도의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각 정당들이 선심성 공약을 들고나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스미타 슈클라 뭄바이대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인도는 가뜩이나 지역ㆍ계층별로 다양한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경제개혁을 추진력 있게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2014년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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