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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학교폭력 유감


1950~1960년대 생(生)들에게 학창시절은 '낭만'과 동의어로 다가온다. 또래들과 주고받던 사춘기의 고민이 그러했고, 등하굣길에서 마주치던 이웃 학교 여학생을 향한 가슴 떨림이 또한 그러했다. 그 시절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던 시집 속의 시 한 구절과 소설 한 편의 감동도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세대에게는 '낭만'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돼야 마땅한 학창시절이 폭력과 집단 따돌림으로 멍들어가고 있다. 폭력의 정도도 갈수록 심해져 조직화하는 양상이라 하니 학교폭력은 사춘기 시절의 치기 어린 '어른 흉내내기'를 넘어선 지 오래인 듯하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학교폭력을 '아이들 싸움' 정도로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대중 매체들이 폭력을 청소년기의 '로망'으로 미화한 것은 아닌지,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학교폭력을 다스리기 위해 '선생님' 대신 '공권력'이 나서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학교는 청소년들이 사회성을 익히는 동시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서는 엄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학습하는 곳이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앞선 수습기간의 무대가 바로 학교이다. 청소년들의 인성과 사회성 교육을 선생님의 '회초리'에 맡겨온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선생님의 회초리는 사라지고 없는 듯 보인다. 제자의 엇나감을 꾸짖는 선생님의 회초리가 '경찰 신고'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존경 받아 마땅한 선생님들이 수업 중 학생들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사태는 학교폭력의 극단에 다름 아니다.



교권(敎權)실종 사태까지 야기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나는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근본 원인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규범'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학교폭력 소식을 접하면서 '법과 원칙'을 사회 유지의 근간으로 여겨 온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올 뿐이다.

사회의 기본을 배워야 할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율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는 세태는 결코 쉽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자율은 기본이 지켜지는 가운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 폭력을 행했다"는 어느 학생의 말은, 작금의 학교폭력이 토론 주제나 뉴스 아이템으로 여기고 넘길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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