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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혁신과 개방적 사고

김경덕 델코리아 대표


요즘 '개방(open)'이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미래 국가 경제 패러다임을 비롯해 모바일까지 확장된 컴퓨팅 환경을 논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개방이다.

정보기술(IT) 시장에서는 개방 소스(open source), 개방 시스템 등 개방이 이미 5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관련 산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은 지도 30여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20여년간 개방은 산업이나 경제 문제에 관한 토론의 키워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개방의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개방을 공감하고 확신하는, 그리고 실행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과제를 추진할 때 그것이 장단기적 관점에서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을 가져다주는 선택이라고 해서 구성원들의 동의와 지지를 쉽게 얻을 수는 없다. 기술적 인프라에 해당되는 시스템,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정책, 리더의 추진 의지, 이에 공감하고 확신을 공유하는 문화 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구성원 의식 등 조직문화가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얼리어답터(조기 선택 소비자군)'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한 세계적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 교수는 그의 명저 '개혁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에서 어떤 사회나 조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 기술이 어떻게 확산돼가는지, 거부되는지를 밝혀냈는데 그 열쇠는 문화와 환경의 차이였다.

'옛것=정통' 사고가 혁신 발목 잡아

개방의 역사는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글은 자모음 28자(현재는 24자)만 알면 되니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고 이를 초성과 중성, 종성이라는 규칙적 조합으로 어떤 말이든 표기할 수 있으니 확장성도 뛰어나다. 한자와 같은 다른 문자나 언어를 한글로 쉽게 표기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뛰어난 확장성의 예다.

한글은 컴퓨터나 휴대폰 환경에 잘 어울리니 미래기술에도 개방돼 있다. 반면 한자는 그 오랜 역사만큼 그 많은 사용 인구와 폭넓은 문화만큼 방대한 체계를 갖췄다. 따라서 끝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과거엔 특정 지식 계층만 국한돼 사용된 폐쇄형 문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기술에 비유한다면 한글은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뛰어난 기술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우선 한자(한문) 문화를 숭배했던 당시 지식층은 이를 외면했고 그중 일부는 조직적 저항을 하기도 했다. 여론을 선도하는 지식층이 그 가치를 공감하고 수용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층에서 한글을 반대한 명분은 문화적 정통성에 관한 것이었다. 모두가 중국 문화, 즉 중국의 문사철(文史哲·문학, 사학, 철학)을 배우는데 이는 한자로 돼 있다. 그들은 한자와 중국의 '文史哲'을 뗄 수 없는 관계로 여겼다.

그러니 새로운 문자는 문화적 혼란만을 야기하고 정통성을 위협하는 이단적인 것으로만 보인 것이다. 그 귀결은 옛것을,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을 정통으로 여기고 이러한 왜곡된 정통성에 집착하는 획일적 사고, 변화를 혼란으로 여기는 폐쇄적 체계에 빠지게 했다.

우리 역사상의 한글의 예처럼 현재 IT나 다른 산업에서 혁신성을 갖춘 데다 기술상 문제가 없더라도 조직문화의 폐쇄적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가치에 공감하고 이를 변화로 이어가며 그 변화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문화, 즉 개방 마인드가 바탕에 깔린 문화가 형성돼 있어야만 그것들이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변화에 대한 긍정·확신 공유해야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개방이 절실하다.

한글의 역사에서 이미 개방을 경험한 우리 민족이 개방을 기반으로 글로벌 미래의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정부는 통합전산센터에서 쓰는 소프트웨어 가운데 개방 구조의 공개 소프트웨어 사용 비중을 오는 2016년까지 40%로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으로 개방 시스템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내려진 이 같은 정부 방침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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