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소강(小崗) 민관식 박사가 16일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18년 개성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제일고보와 수원농대, 일본교토(京都)대를 졸업했으며 정계와 학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53~66년 고려시보사장을 지냈으며, 1954년 제3대 민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정계입문한 고인은 4ㆍ5대 민의원에 이어 6대 국회의원에 이어 10대 국회에서 부의장과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또 1966년에는 대한약사회 회장을 맡았고 1971년부터 74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사무실 문에 ‘평생 현역’이라는 글귀를 써 붙인 것으로 유명했던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은 특히 체육계와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을 맺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장에 올라 71년까지 한국체육을 이끈 고 민관식 부의장은 68년부터 70년까지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 스포츠 근대화의 토대를 이룩했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으로 내세웠던 고인은 “선수촌을 지으려면 태릉으로 가보라”는 꿈을 꾸고 난 뒤 태릉의 부지를 물색했다는 일화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60년대 자신의 아호를 딴 ‘소강배 전국중고테니스대회’를 창설해 50여년간 사재를 털어 개최했던 고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 마니아로 별세 전날인 15일에도 테니스를 쳤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문교부 장관 시절인 73년 고교 무시험 정책을 발표했고 한글전용 정책을 적극 실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설득해 실용한자 1,800자를 제정하는 등 지금도 역대 최장수 교육장관으로 꼽힌다. 제일고보(현재의 경기고) 재학시절 일본인 학생과 자주 충돌하며 ‘제일고보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던 고인은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 때 박 전 대통령에게 일본과의 단교 불가를 직언하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등 숱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또 고향에서 대동청년단장으로 반공투쟁을 하다 암살된 형(민완식)의 아호를 딴 중산(重山)육영회를 1957년 설립, 50년간 운영해왔다. 고인은 생전의 공로를 인정 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개성명문가출신으로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나 정치인 부군의 손님수발을 들다, 전통 개성음식 전문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는 부인 김영호(81) 여사와 병의(63), 병찬(52ㆍ이상 개인사업), 병환(49ㆍ공무원)씨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0일 오전9시에 치러진다. (02)3410-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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