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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모(23)씨는 신용카드 대금을 막으려 대부업체에서 빌린 500만원을 갚지 못해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아르바이트만으로 용돈을 충당하지 못해 별생각 없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상담과정에서 대출과 연체이자의 무서움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후회했다.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 등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당국의 소비자보호 소홀과 금융문맹(financial literacy)에서 비롯됐다. 또 지난 2003년 신용카드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회사의 지나친 외형확대와 금융소비자의 신용관리 실패를 들 수 있다. 김씨처럼 소비자들이 능력을 넘어서는 대출과 소비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체계적인 금융교육을 받지 못해서라는 얘기다. 결국 금융에 대한 공급자와 소비자의 이해 불균형이 가계부채의 원인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위기는 금융감독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가운데 촉발됐으므로 금융소비자 스스로의 금융역량을 강화해 금융공급자와의 불균형을 해소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금융문맹 퇴치는 청소년 금융교육부터=금융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국내 금융교육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각종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금융교육의 필요성만 강조할 뿐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나 중장기적 전략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금융당국이나 금융회사에서 각급 학교를 중심으로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아직도 시작 단계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금융교육시범학교'로 지정한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240곳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09년 20곳에서 2010년 60곳 등으로 늘어난 숫자다.
또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들이 나름대로 금융교육을 지원하지만 사업내용이나 프로그램이 제 각각이라 교육성과가 높지 않다. 지원 대상이 중복 또는 편중되거나 서로 다른 내용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교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기송 KB국민은행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들의 금융교육은 단순하게 어린이 위주로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 측면에서 추진되고 있다"며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소외자 해소 노력 선행돼야=최근 소득양극화가 진전되면서 경제적 소외계층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도 시급하다. 특히 금융교육 사각지역에 놓인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금융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금융지식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 등에서 개인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개인을 대상으로 부실재발 방지를 위해 사후적 신용교육을 하고 있지만 사전적 예방 차원에서 금융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한계 계층의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금융지식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미소금융ㆍ햇살론 등의 정책적 서민금융과 신용교육을 연계해 대출기간에 일정 횟수의 금융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금융교육 이수자에게 가산금리 등을 제공하는 등의 유인책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관 금융교육 통합, 공교육 보완해야=전문가들은 금융교육을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민간단체ㆍ금융회사 등이 연계해 중장기 전략을 갖추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금융지식은 하루 아침에 깨우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교육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수립되고 지속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오흥선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은 "장기적 전략을 세워 정부와 민간단체ㆍ금융회사가 협력관계를 구축한 뒤 학교와 사회의 금융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소비자의 합리적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적 측면에서 금융교육을 법제화ㆍ전문화ㆍ표준화하는 방안도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 특히 급변하는 금융 패러다임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금융공급자와 소비자 간 불균형과 사회계층 간 교육격차나 위화감을 해소할 수 있다.
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위원은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서는 금융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며 "누구든지 최소한의 금융교육을 받게 하려면 공교육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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