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올해 US여자오픈 우승자인 박인비는 지난 7일 우승트로피를 올해 입학한 광운대에 전달했다. 이로써 US여자오픈의 우승컵은 광운대에서 1년간 보관하게 됐다. 박인비가 광운대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본지와의 인터뷰 당일인 지난달 11일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19살의 박인비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는 1988년 7월12일생이다. 미국 LPGA 최고의 권위를 지닌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새로운 삶을 출발한 박인비에게 여러모로 상징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스무살이 됐다. ■ 1998년과 2008년의 만남 1998년 박세리의 감동적인 US여자오픈 우승 후 골프팬들은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그 사이 강산이 바뀌었고 박세리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감동의 순간은 추억이 됐다. 그런데 그 추억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박세리가 LPGA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골프를 시작한 ‘박세리 키드’가 등장해서다. 그 중에서 선두권에 선 이가 바로 20살의 앳된 숙녀 박인비다. US오픈에서 우승한 그녀에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라는 관용구는 물을 마시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US오픈 우승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기 때문이다. 물론 19살 이전의 그녀에게 지금은 꿈과도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녀의 말을 빌면 “우승은 정말로 먼 길이라고만 생각”해서다. 하지만 우승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에서부터 대회장에서의 대우, 갤러리의 환호, 든든한 스폰서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한 일들이다. LPGA에서는 전담 경호원까지 붙여줄 정도였으니 그녀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만하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승 후 ‘박세리 키드’인 박인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세요?”라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세리 언니야.”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박세리의 전화에 그녀는 또 다른 감격에 휩싸였다. 대회장에서 알아보는 이들도 늘어났다. 우승 후 처음으로 출전한 NW 아칸소챔피언십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사인을 청하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폴라 크리머, 모건 프레셀 등 LPGA 스타들과 한 조에 편성됐던 그녀는 “제 팬인지 폴라 크리머의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갤러리가 따라다니고 제 이름을 부르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며 “단지 골프 선수라서 사인을 해달라던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정말 힘이 된다”고 기뻐했다. ■ ‘행복한 가족’과 ‘박세리 키드’ 그러나 가장 행복한 일은 역시 뒤를 받쳐준 가족들의 기쁨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모두 골프를 좋아하고 실력 역시 상당하다. 그러나 그녀를 뒷바라지하면서 가족에게 골프는 스트레스가 됐다. 눈을 뜨면 필드만 보일 정도로 가족 모두의 일이 골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그런 가족에게 이번 우승은 최고의 청량제였다. 그녀는 “가족의 기도가 많은 도움이 됐다”며 “기도는 많은 이들이 해줄수록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비결도 기도”라고 귀띔했다. ‘박세리 키드’인 1988년생 LPGA 친구들은 특별한 존재다. 박인비는 “나연이나 선화, 지애 모두 많은 도움이 된다. 친구라 서로 의지도 되고 라이벌 의식도 생겨서 더욱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사석에서는 버팀목이자 대회장에서는 승부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라이벌인 것이다. 그러나 ‘박세리 키드’가 한 자리에 모일 일은 대회밖에 없다. 그녀는 “지금은 한 자리에 다 모이지 못했지만 비시즌인 겨울에 모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덧붙여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최나연의 공주병과 비시즌인 신지애의 식성에 대해 “나연이가 공주병이라는 건 친구들 중 얼굴을 가꾸는 데 관심이 가장 많아서다. 지애와는 US오픈 때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배가 고팠는지 밥을 많이 먹더라. 사실 밥이라는 게 많이 먹을 때도 있고 적게 먹을 때도 있지 않은가?”라며 미소를 지었다. ■ 스무살의 설렘, 그리고 박인비 처음으로 교정에 발을 들인 만큼 감회도 남달랐다.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이미 일상이 되었지만 박인비에게는 아직 부러운 생활이다. 그래서 학교를 정말 다녀보고 싶다며 오는 9월 시작하는 새 학기에 한 달간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 기대감이 앞선다고 한다. 학교 생활을 통해 친구도 많이 사귈 생각이다. 현재 그녀는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고 이메일로 리포트를 내는 등 바쁜 와중에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있다. 과제를 가장 늦게 낸 적이 마감 당일이었을 정도로 착실한 학생이다. 쉴 때는 주로 TV나 영화를 자주 보는 그녀는 연예인 중에서 영화배우 조인성을 가장 좋아한다. 영락없는 스무살 소녀다. LPGA 투어가 힘들만도 하지만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생활이나 언어에 불편함은 없다. 박세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박인비의 US오픈 우승은 또 다른 감동일 수 있다. 그러나 박인비에게 이번 우승은 시작이다. 자신도 “첫 우승이기 때문에 많은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도 이 자신감을 가지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운을 북돋았다. 그녀는 10대의 마지막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첫 우승의 기쁨과 함께 첫발을 디딘 20대는 아마도 그녀에게 또 다른 설렘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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