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는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아들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석유 자원의 한계와 석유 시대 이후의 달라진 삶을 빗댄 말이다. 20세기 인류가 이룩한 경이로운 기술 진보와 화려한 편의성은 값싼 화석 연료를 풍부하게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화석 연료는 우리가 하늘을 날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짐을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기도록 했으며, 어둠을 지배하는 밤의 절대적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냈다. 또한 어디에나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했고 막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해 냈으며 창조적인 산업을 발달시키는 등 인간의 한계를 신적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 책은 미국의 작가 겸 사회비평가인 저자의 최대 문제작이다. 저자는 믿을 만한 자료들을 토대로 이미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세계 석유 생산의 정점(peak oil)을 지났다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시점으로, 이 절반은 가장 취하기 쉬웠던 절반,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절반, 가장 질이 좋고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절반이었다. 남아 있는 석유는 북극이나 바다 밑 깊숙한 곳 등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기 때문에 추출이 어려울 뿐더러 투입 비용이 남은 양의 가치를 월등히 넘어선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는 지금 한 해에만 약 270만 배럴의 석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남은 석유의 총량은 앞으로 37년(2005년 기준) 사용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석유 시대 이후 인간 삶을 '장기 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라고 명명한 저자는 지질사의 독특한 산물인 화석 연료 덕분에 인류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첨단 사회를 이룩했지만 이는 인류사에 '단 한 번뿐인 사건'으로 화석연료 시대의 '인디언 서머'(겨울이 오기 전에 일시적으로 따뜻해지는 늦가을 시기)와도 같은 시기였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점은 석유 없는 생활을 영위해 본 적이 없는 대다수 현대인들로서는 석유 없는 삶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됐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문제의 핵심은 석유의 고갈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적 망상과 안일함에 있다고 꼬집는다. 사실 한정된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우려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논의됐으며 대책 마련에 대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은 수소에너지나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등 대체에너지가 인류의 삶에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저자는 대체 에너지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체에너지 대부분이 화석 연료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세계의 곡물 생산량을 250%나 증가시킨 20세기 말의 '녹색 혁명' 또한 전적으로 화석 연료 투입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석유 고갈과 온난화가 맞물리며 엄청난 식량난이 인류를 위협하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저자가 그리는 장기 비상시대의 삶이 전적으로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 공급 문제로 인해 정치ㆍ경제ㆍ사회 시스템이 크게 위축되면서 오히려 공동체적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고 인간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과 행복의 본질이 거대한 도시나 대형 마트의 파격적인 가격 혜택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것들에 있다는 저자의 가르침은 석유 이후의 장기 비상시대를 대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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