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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한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입력2004-09-22 16:46:57
수정
2004.09.22 16:46:57
정문재 국제부 차장
중국에서는 지난 8월부터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한 추모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이런 추모열풍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덩샤오핑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중국이 미국 못지않은 경제대국을 꿈꾸는 것도 그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경제발전계획을 과감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77년 오뚝이처럼 권력무대에 복귀하자마자 적극적인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는 덩샤오핑 스스로 사상논쟁이 ‘정의(正義)’ 등 아무리 그럴듯한 구호를 외쳐도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권력투쟁일 뿐 국리민복(國利民福)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사상논쟁의 해악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류사오치(劉少奇)와 함께 수정주의자로 몰려 유폐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그에 대한 박해는 가족들에게도 미쳤다. 맏아들은 척추를 다쳐 불구자가 됐다.
문화혁명은 덩샤오핑의 가족뿐 아니라 모든 중국 국민들에게 재앙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를 외치며 홍위병들을 부추기자 중국은 테러와 비판만이 난무하는 광란의 무대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물론 노동자ㆍ농민마저 사상논쟁에 휩쓸리다보니 경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도처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결국 문화혁명은 말이 좋아 혁명이지 중국 국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마오쩌둥 한 사람의 절대권력을 강화하려는 ‘더러운 권력투쟁’이었다.
문화혁명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문화혁명과 유사한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사 규명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과 반목이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명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보안법 폐지는 필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여기에 수긍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상당수 국민은 이런 이념논쟁의 이면에는 ‘정치적 동기’가 숨어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사회 원로들의 시국선언도 이런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 아닐까.
지금은 모든 국민들의 힘을 합해도 경제난을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마오쩌둥보다는 덩샤오핑과 같은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에는 ‘마오쩌둥’의 얼굴만 오버랩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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