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오일머니에 힘입어 경제적으로도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8일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세계은행에 대한 기부금을 선진7개국(G7)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20일~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합동 연차 총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부금 규모는 G7국가 가운데 기부금을 가장 적게 내는 캐나다의 7억 달러 이상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조처는 최근 카스피해 연안의 천연자원과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가 경제 분야에서도 국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부활' 프로젝트를 전방위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원천은 오일머니 덕택이다. 러시아의 외환 및 금 보유액은 디폴트(국가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지난 1998년 당시의 120억 달러에서 최근 4,34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베어스턴스의 팀 애쉬 매니징 디렉터는 "러시아는 경제 부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국제 금융 기구에서 큰 역할을 맡길 원한다"며 "이는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취할 것이며, 유럽과 미국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독자행보는 지난 9월 국제통화기금(IMF)총재 선출 때 미국이 지지한 스트로스칸 후보를 외면하고, 조세프 토소브스키 전 체코총리를 민데서도 드러났다. 그 이면에는 국제 기구가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ㆍ인도 등 신흥 경제 대국의 의중과는 별개로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푸틴의 불신이 녹아있다. 푸틴은 지난 16일 이란 방문 때도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자원 패권주의를 염두에 두고 카스피해 연안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푸틴의 도발에 가까운 행보를 놓고 "교활하다"고까지 말하는 등 양국간의 관계가 '신냉전'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푸틴은 3선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피해 퇴임 후 총선에 출마, 총리로서 권력공백을 최소화한 뒤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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