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책 당국자들을 만나 보면 국내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곤 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틈만 나면 "대외여건 호전 등에 힘입어 경기회복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거나 "경기회복세가 모든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긍정적인 진단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서서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경기회복의 온기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엿보인다. 정부의 말대로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올 들어 산업 생산량은 전부문에 걸쳐 증가세로 돌아섰고 경기동행지수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자동차 내수판매가 회복세를 보이는 등 소비 부문의 증가폭도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씩 호전되는 것도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낙관론을 늘어놓다 보니 일반 국민들로선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산업현장에선 통계상의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만 커진다는 하소연이 들려오고 있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려고 인천 남동공단을 찾았더니 그의 얼굴이 아주 죽을상이었다. 일본에 공작기계 관련 부품을 납품해온 그는 올 들어 매출이 30~40%나 줄어들어 직원들을 내보내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느라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아예 공장을 매각하고 주문제작을 외주방식으로 바꾸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굴지의 간판기업들은 올해 실적전망이 나쁘다며 앞다퉈 긴축경영에 들어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괜찮았던 실적마저 글로벌 경쟁사들의 추격으로 인해 2~3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질칠 것이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잘 나간다는 기업들의 형편이 어려우니 일반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질 뿐이다. 치솟는 전세난에다 가계부채, 불안정한 미래가 뒤엉켜 경기회복을 느끼기는커녕 지갑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경기회복세가 워낙 미미하다 보니 일반 국민들로선 제대로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서민들로선 2016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이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러다간 경기회복의 분위기조차 미처 실감하지 못하고 다시 침체의 늪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지금은 보다 긴 안목에서 성장회복의 싹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경기회복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무리수를 범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들은 지난달 공동성명을 통해 구체적인 성장목표를 정하고 각국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정부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고 성장잠재력을 키우겠다고 나섰다.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하지만 정부가 의욕만 넘치다 보면 관 주도의 왜곡된 산업생태계가 조성되고 기업의 경쟁력은 실종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민간의 활력을 최대한 북돋우고 시장원리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국민들이 경기회복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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