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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5일] 자유헌장
입력2006-08-04 16:46:54
수정
2006.08.04 16:46:54
[오늘의 경제소사/8월5일] 자유헌장
권홍우 편집위원
헨리는 불안했다. 정복왕 윌리엄 1세의 셋째로 왕위를 계승한 윌리엄 2세가 사냥터에서 의문의 화살을 맞고 사망하는 통에 권력을 잡을 기회를 맞았지만 막내라는 위치 때문이다. 어려서 죽은 맏이를 대신해 장남 노릇을 해오던 둘째 로버트가 십자군전쟁에서 귀환하면 경쟁에서 밀려날 처지였다. 선택은 대국민 유화책. 정복민족인 노르만은 물론 앵글로색슨족의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유헌장(Charter of Liberties)’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1110년 8월5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즉위식(대관식)에서 발표돼 ‘대관식헌장’ ‘헨리헌장’으로도 불리는 자유헌장의 골자는 선왕의 악정 폐지와 귀족의 특권, 자유민의 권리 존중. 14개 조문에는 교회 재산권의 인정과 상속ㆍ결혼ㆍ후견ㆍ과세에 부당한 강압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포함됐다. 색슨 왕국 시절의 법률을 되살려 기층민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배가 부르면 생각이 바뀌게 마련. 행정개혁으로 왕권이 안정됐다고 판단한 헨리 1세는 자유헌장의 무력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형 로버트와 싸움을 벌여 프랑스 내 영토인 노르만디 공국도 잉글랜드 왕국에 합병할 만큼 힘이 강해지자 자유헌장은 효력을 잃었다. 일종의 선거유세용 공약이었던 자유헌장도 공약(空約)으로 전락했다.
당대에는 빛을 못 보던 자유헌장은 115년 만인 1215년 되살아났다. 대헌장(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대헌장의 뿌리를 제공한 자유헌장은 경제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유재산권 보호가 법률의 기본요건으로 자리잡고 자본주의가 움트는 토양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어떤 왕도 역사의 진보를 막지 못했다. 시간을 지체시켰을 뿐이다.
입력시간 : 2006/08/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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