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 전남 광양<br>10만 그루 매화마을 장관<br> 백계산 옥룡사지'불교성지'<br>광양불고기'재래식 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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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눈꽃에 눈 시렵구나 봄, 어디만큼 왔느냐
■봄의 시작 전남 광양10만 그루 매화마을 장관 백계산 옥룡사지'불교성지'광양불고기'재래식 진미'
광양=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사진제공=광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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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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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모진 바람과 추위를 홀로 이겨낸 끝에 꽃망울을 터뜨려 봄이 왔음을 알린다. 겨울의 끝자락에 찾은 전라남도 광양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광양(光陽)은 이름처럼 일년 내내 따스한 햇살이 빛나는 고장이다.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의 필수 요건으로 꼽는 남수북산동천(南水北山東川)의 입지까지 갖추고 있다.
풍수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이 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짐작할만하다.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는 "조선지 전라도요, 전라지 광양"이라며 광양을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광양 매화마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위치한 매화마을은 이른 봄이 되면 마을 전체가 온통 새하얀 매화로 뒤덮인다. 10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3월 한 달은 매화 향기에 흠뻑 취할 정도다. 매화나무 사이를 지나 마을 언덕에 올라서면 꽃과 산과 한데 어우러지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매화 향기로 가득한 봄 기운을 만끽하고 싶다면 3월 13~21일 열리는 광양매화문화축제 기간에 맞춰 매화마을을 찾는 것이 좋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광양매화축제는 해마다 상춘객들의 발길이 크게 늘며 올해는 약 100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매화축제는 '매화, 삶과 문화로 다시 피어나다'라는 주제에 맞춰 광양매실향토음식 경연대회, 남해성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 매화꽃길 음악회, 매화문학동산 시낭송회를 비롯해 매실음식 만들기, 매실씨 새총쏘기, 매화마을 영화상영 등 관광객들과 매화가 하나가 되는 다양한 체험행사를 마련한다.
매화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6만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에 가면 2대째 매실농원을 지키고 있는 매실명인 홍쌍리(67) 여사를 만날 수 있다. 청매실농원은 1917년 홍 여사의 시아버지인 율산 김오천 선생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시작한 곳이다.
"꽃은 내 딸이요, 매실은 내 아들이요, 아침이슬은 나의 보석"이라고 말하는 홍 여사는 매실농원이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마음 속 찌꺼기를 버리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예찬한다. 현재 이 곳에는 매실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3,000여개 전통 옹기와 왕대나무숲, 매화산책로 등이 잘 조성돼있다.
◇과거와 현대가 함께 살아숨쉬다= 광양은 지난 1990년대 국내 제2의 철강도시로 우뚝 서며 현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도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광양제철소와 동북아 자유무역도시의 밑거름이 될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는 광양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광양의 전부는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천 년 역사의 유적들은 현대화된 도시 광양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광양 백운산의 한 지맥인 백계산 남쪽에 위치한 옥룡사지는 신라말의 승려이자 풍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 도선이 창건해 864년부터 898년까지 수백 명의 제자를 양성하다 입적한 천 년 불교의 성지다. 옥룡사는 조선후기(1878년) 화재로 소실돼 흔적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도선국사가 옥룡사 창건 당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는 천 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깊이 뿌리내려 현재는 약 7,000여 그루의 국내 최대 동백 군락지로 자리잡았다. 매년 2월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하는 동백은 3월과 4월이면 절정에 이르며 옥룡사지 일대를 붉은 빛으로 물들여놓는 장관을 연출한다.
옥룡사지 인근의 도선국사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면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문화를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다. 다도교육부터 도자기 벽화 그리기, 천연 염색, 산나물 뜯기, 도자기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들이 마련돼있어 대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대대로 고을 원님들의 전용 식수로 사용됐다는 사또 약수터는 지금도 저 멀리 경남 진주에서 물을 뜨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물 맛이 좋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곳= 전북 진안군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총 길이 212.3km로 전북, 전남, 경남의 3개도 14개 시ㆍ군 지천이 광양시 다압면 섬진에서 모두 만나 남해로 흘러간다. 강 좌측에 지리산, 우측에는 마이산ㆍ내장산ㆍ무등산ㆍ사자산ㆍ조계산ㆍ백운산으로 이어지는 ㄷ자 모양의 산줄기인 호남정맥에 둘러싸인 섬진강은 우리나라 5대강 가운데 가장 수질이 맑기로 유명하다.
이를 증명하듯 섬진강 유역에는 청정물고기의 대명사인 은어를 비롯해 참게, 재첩, 민물장어, 벚굴 등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다. 550리의 긴 여정을 쉼없이 달려온 섬진강은 망덕포구에서 잠시 거친 숨을 가다듬고 유유히 남해바다로 향한다.
섬진강은 원래 모래가 많다고 해 모래내 또는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리다가 고려 우왕 11년(1385년경)때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 당시는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시기로 특히 광양만과 섬진강 일대는 왜구들의 주요 침입로 중 하나였다. 한번은 왜구들이 경남 하동에서 강을 건너 광양으로 침입하려 하자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떼를 지어 몰려와 울부짖었다.
이에 놀란 왜구들이 도망쳤고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따서 섬진강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며 군사적 요충지의 중요성이 부각된 섬진강 나루터는 1705년 정식 수군진이 설치돼 1895년 폐쇄될 때까지 4척의 병선과 수백 명의 수군이 주둔했다. 현재 섬진 나루터에는 섬진진의 책임자인 수군별장들의 공적비 좌대로 사용했던 4개의 두꺼비 석상이 남아있다.
◇광양의 먹거리= 광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불고기. 광양 불고기는 쇠고기를 구리 석쇠에 올려 참나무 숯불에 구워먹는 재래식 고기구이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만큼 연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맛의 비법은 고기를 써는 기술과 정성에 달려 있다.
광양 불고기는 한우부위 중에서도 지방이 적고 부드러운 등심만을 사용한다. 특히 고기 사이사이에 있는 힘줄과 기름은 모두 떼어내고 살코기는 결 반대로 썬 후 자근자근 두드려줘 고기가 더욱 연해지고 양념이 잘 밴다. 손질한 고기를 먹기 직전에 간장, 설탕, 참기름, 깨, 소금,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내는 것이 핵심. 고기를 미리 양념에 재워두면 고기 특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벚꽃이 피는 봄철에 가장 맛있다는 벚굴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크기가 무려 30cm나 된다.
이른 봄날, 앞마당에 쌓인 눈이
싸묵싸묵 녹을 때 가리
나는 꼭 그러쥐었던 손을 풀고
마루 끝으로 내려선 다음,
질척질척한 마당을 건너서 가리
내 발자국 소리 맨 먼저 알아차리고
서둘러 있는 힘을 다해 가지 끝부터 흔들어보는
한 그루 매화나무한테로 가리.
-이른 봄날(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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