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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영원한 고향
입력2007-02-16 16:05:04
수정
2007.02.16 16:05:04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가 고향에 되돌아간 까닭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하나는 그녀가 남편을 죽였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남편과의 공간에서 멀어지고 싶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귀향’이 물리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위라기보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근원적 공간으로의 회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향과 어머니, 귀향은 곧 회귀이고 깊은 곳에 은닉된 근원과의 회후인 셈이다.
영혼의 안식처자 위안의 공간
한국 소설사에 형상화된 ‘고향’ 역시 유사하다. 지난 90년대 소설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을 윤대녕은 서울에 살고 있는 타향 사람들의 심정을 ‘임시번호판을 붙인 자동차’에 비유한 바 있다. 참 멋진 비유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 문장은 늘 이방인으로서 불안을 느껴야만 하는 타향살이의 쓸쓸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끊임없이 회유하고자 하는 ‘은어’를 소설의 모티프로 차용한 것 역시 이 불안함, 고향과 근원으로부터 멀어진 자의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소설가들의 마음을 아프게 건드렸던 김승옥의 소설도 그렇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위선적인 서울의 삶이 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모태적 공간으로서 고향을 그려냈다. 고향은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처방이자 위안의 공간인 셈이다.
그렇다면 ‘고향’은 늘 안정이자 회귀이고 풍요로운 화해의 공간이기만 할까. 실상 그렇지만은 않다. 떨어져 있으면 그립지만 만나보면 싸움의 빌미를 갖게 되는 가족처럼 고향의 순수성 역시 거리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고향만큼 ‘나’ 자신의 초라함이 보관된 장소도 없고 또한 고향만큼 현재의 내가 지닌 가치에 민감한 곳도 없다. 누군가가 거둔 성공ㆍ명예ㆍ재산에 대한 소문이 날카로운 잣대로 남아 있는 그곳이 한편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에 남아 세무사로 군림하는 친구 ‘조’의 거들먹거림에 “서울에서의 나는 바쁘다고 말할 틈도 없이 바쁘다”며 경멸하는 ‘무진기행’의 주인공 희중의 심사는 아마도 고향에 대한 이런 뒤틀린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은 양가적 갈등의 대상이 돼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단어이다. 나를 비롯해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실상 서울을 타향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그 깊은 그리움에 공명하지 못한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이 농담처럼 내겐 고향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울이 고향인 필자에게 유년기가 보존된 안온한 화해의 공간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태어나 자란 공간 속에서 경쟁으로 포화된 현실과 조우했고 그 현실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견뎌야 하니 말이다.
민족의 명절 ‘설’을 앞두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수많은 차량 행렬을 관습처럼 지켜보는 필자에게 그래서 그 모습은 풍경이자 의문이고 부러움이다. 하루 동안이라는 시간을 꼬박 길에서 허비하고 난 후 맞게 될 고향의 어떤 공기가 끊임없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는 연어처럼 왜 으레 ‘고향’은 되돌아가야 할 공간인 것일까. 고향이라는 언어가 지닌 그 어떤 힘이 자발적 순례의 행렬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와 같은 의문들 말이다.
귀향행렬 보면 그리움과 부러움
밀란 쿤데라가 말하길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향수’는 “그곳이 어찌됐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 상실감이라고 한다. 헤어진 첫사랑을 그리는 마음처럼, 이타카를 향해 유혹을 물리친 오디세우스처럼, 어쩌면 고향은 그렇게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기에 더 그립고 애틋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고향이란 가야 할 물리적 공간이기 이전에 사라져 감촉할 수 없는 원본성이 보존된 그곳이기에 고향이다. 영원히 상실된 근원적 공간이자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보관소, 완전한 회귀가 불가능하기에 그곳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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