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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3월26일, 백악관 앞 잔디광장.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조약을 맺었다. 본조약과 3개 부속문서, 2개 공동서한, 2개 합의각서 등 5개 문서, 16건을 담은 조약의 골자는 적대 관계 청산. 이스라엘은 조약에 따라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점령하고 있는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줬다. 양국은 이듬해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선박의 수에즈 운하 통행권과 시나이산 원유의 대 이스라엘 판매를 보장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자치권 부여 조항이 불분명하다는 불씨를 남겼지만 미국은 조약을 크게 반겼다. 문제는 '중동평화조약'이라고도 불린 양국의 평화조약이 중동의 평화를 가져 오지 못했다는 점. 모든 중동국가들과 소련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아랍연맹은 즉각 14개국 각료회의를 소집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 없는 평화협정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아랍국가들의 주요 도시에서는 반 이집트 시위가 일어났다. 불구대천의 원수로 싸우던 두 나라가 어떻게 악수하게 됐을까. 재선을 위해 '중동평화'라는 업적이 필요했던 카터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와 1977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한 사다트 대통령의 대화 의지, 강경파로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베긴 총리의 대미관계 개선 노력이 서로 맞물렸다. 평화조약의 대가로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20억달러의 경제 및 군사원조를 약속 받았다. 평화조약 체결 31주년을 맞는 오늘날, 두 나라 사이는 개선됐지만 중동의 갈등구조는 그대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약속을 손쉽게 뒤집으며 정착촌 건설 등 강경 팽창 전략을 고수하고 아랍인들은 테러로 맞서고 있다. 31년 전의 평화조약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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