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불안을 이유로 든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양적완화 유지 결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을 더 큰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8일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부각되고 있는 시장은 연준이 실제 양적완화 축소 결정을 내리기까지 극도로 민감한 움직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상을 뒤집은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유지 결정이 시장의 변동성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수'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연준 출구, 왜 돌연 막혔나=18일(현지시간) 버냉키 의장은 FOMC의 양적완화 유지 결정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6월 이후 나온 경제지표들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키지 못했다"며 "채권매입 속도를 조절하기에 앞서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더 기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제지표가 크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7.3%에 달하는 실업률과 전년 대비 1.5% 상승에 그치는 저물가 등을 고려할 때 아직 부양책에서 발을 빼기는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과 정부폐쇄 리스크가 고조된 것도 막판 연준의 판단을 가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 의장은 "정부 폐쇄와 부채한도 증액 실패가 금융시장과 경제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FOMC 회의 직후 연준이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6월 제시한 2.3~2.6%에서 2.0~2.3%로 하향조정된 것은 연준의 이러한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불안만 키운 '선제 안내'=확실한 경제 회복 흐름을 기다리겠다는 연준의 결정은 자칫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월 출구전략을 기정사실화했던 시장의 예상을 뒤엎은 연준의 결정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예측불가능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미국 경제의 취약점을 드러내 경기회복에 대한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기업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안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출구전략에 대한 연준이 초래한 시장 변동성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엘에리안 CEO는 "이제 시장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것"이라며 "변동성은 경제에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FOMC에 앞서 한때 3%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연준 발표 직후 2.6%대로 급락했으며 세계 증시도 불안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수개월 동안 연준의 출구전략 여부에 휘둘려온 신흥국들의 경계감은 극에 달했다. 태국중앙은행은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연기로 밧화가 추가 불안 위험에 직면했다며 오는 12월 FOMC 회의 때까지 태국 금융시장 내 급격한 외국 자본 유출입 가능성을 경고했다.
◇10월? 12월? 불확실성 증폭=9월 출구전략이 물 건너가면서 시장의 관심은 버냉키 의장의 임기 동안 열리는 두 번의 FOMC 회의(10월, 12월)로 쏠리고 있다. 일단 시장에서는 12월 출구전략 결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버냉키 의장은 "정해진 일정은 없다"면서도 앞으로 나오는 경제지표에 따라 "올해 말에 움직일 수 있다"며 12월에 양적완화 축소에 돌입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블룸버그가 실시한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도 연준이 연말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FOMC 의결권을 갖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가 10월 출구전략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시장의 혼란이 증폭됐다. 불러드 총재는 "FOMC의 결정은 경계선에 놓여 있다"며 "이미 양적완화 축소 결정에 근접한 만큼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바꿀 만한 몇몇 지표가 나오면 10월에 소규모로 양적완화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연준의 애매한 메시지들은 시장과 중앙은행의 소통에 대한 괴리와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의 휴 필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서 연준을 믿을 수 있겠냐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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