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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8월 20일] '親서민' 서두르다 탈난다

최고의 서비스로 유명한 노드스트롬백화점은 지난 1990년대 초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과 평가방안을 도입했다. 직원들에 대한 '시간당 매출액'이다. 시간당 매출이 높은 사람은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일하기 좋은 매장으로 배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요지였다. 성과가 나쁘면 문책당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런 평가가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여 경영성과를 끌어올릴 것으로 믿었고 실제로 초기에는 매출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애매한 정의·기준에 혼란 가중

그 이유는 이랬다. 직원들 사이에 단순히 매출만을 높여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사고가 싹텄기 때문이다. 일부 직원들은 일ㆍ주 단위로 매출이 부진하면 자신의 신용카드로 자신이 담당하는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며칠 뒤 다른 지역의 매장에서 환불 받았다.

매출이 늘어난다고 생각했지만 판매된 제품의 상당 부분이 반품돼 재고로 쌓였다. 고객서비스 역시 악화됐다. 매출을 높이는 데만 혈안이 돼 고객관리 활동에 소홀했던 탓이다. 단기 성과주의의 부작용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과 상생,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관련 부처의 정책이 모두 이에 맞춰지고 있는 듯하다. 부처마다 친서민 대책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싸매고 있고 애매모호하기 만한 서민의 정의와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기업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시간에 쫓기기라도 한 듯 앞다퉈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및 상생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마치 뒤처지면 경쟁에 지는 것만 같은 분위기다. 급기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오는 26일 이미 상생방안을 발표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망라한 주요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 및 협력방안을 종합, 발표하기로 했다.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하지만 친서민과 상생, 공정사회 구현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부자와 서민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만들어낼 정도로 친서민을 강조했지만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는지 체감하는 게 많지 않다. 한없이 몰아쳤지만 여전히 이 정부에서도 서민이 핵심이슈로 떠오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앞으로 남아 있는 2년 반이라는 짧은 세월에 모든 일을 다 이루고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려 하다가는 노드스트롬백화점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전봇대' 사건을 되돌아보면 교훈을 삼을 게 있다. 2007년 말 당시 이 대통령 당선인은 수많은 민원에도 5년 동안 처리되지 않은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언급하면서 관 조직의 탁상행정을 질타하고 현장중심의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백 번 공감 가는 말이고 새 정부가 당연히 추진해나가야 할 개혁 방향이었다.

합의 이끌어 문화로 정착해야

문제는 이 이후부터 나타난다. 이 당선인의 말이 전해지자마자 당시 산업자원부가 부랴부랴 점검반을 파견하고 한전 직원도 급파됐다. 더구나 겨울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전봇대 이설작업이 펼쳐졌다. 비 오는 날에는 가급적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관례는 무시됐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것 역시 전 정권시절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 한 친서민정책이 낳은 부산물이다.

친서민과 상생은 결코 돈 한푼 적선하듯 지원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문화로 만들어 이를 정착시켜야 할 일이다. 시장원리도 따지고 과도한 부담은 없는지 하나씩 점검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도 많다.

이를 무시하고 단기 성과에 얽매이다 보면 부작용이 커지고 정권이 바뀐 뒤 친서민정책은 선심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비판 받게 되는 과오가 재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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