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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선진국에서 배운다] 해고 대신 근로시간 단축 합의… 獨 140만명 실업위기 넘겨

<4>신뢰로 쌓은 노사 협력관계


경영악화에도 고통분담 자세로 해법 찾아

2009년 금융위기 벗고 경제 급속 회복 성공

"합의 도출하려면 노사정 공동의 목표 설정

작은것부터 먼저 풀고 점차 접점 늘려가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독일 경제성장률은 -5.1%로 주변국보다 침체의 폭이 훨씬 넓었다. 수출 비중이 높은 탓에 글로벌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수출 주문이 대거 취소되고 기업마다 경영상태가 악화돼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했다. 이런 위기에서 독일 노사는 머리를 맞댔다. 금속·기계·자동차·전자 등 상당수 제조업 노사는 '조업단축제도'를 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근로자 수를 줄일 것이냐, 아니면 근로시간을 감축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기업은 해고하는 대신 근로자의 업무시간을 40시간에서 37시간, 35시간 심지어 26시간으로 줄이면서 고용을 유지했다. 정부는 사회보장비와 함께 필요할 경우 기존 임금의 최대 67%까지 지원해 줄어든 임금을 보전해줬다. 2009년 독일은 경제위기를 이렇게 넘어섰다. 단순히 위기만 넘어선 게 아니라 빠른 반등의 토대가 됐다.

귄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는 12일 "노사가 위험 부담을 같이 나눠 가진다는 자세로 해법을 찾음으로써 140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어야 했던 위기를 이겨냈다"고 밝혔다.

프랑크 자흐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국제정책 총괄도 "노사가 유연하게 대처해 경기가 회복될 때 공장을 재가동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며 "많은 경제학자가 그때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면 독일 경제가 살아나는 데 오래 걸렸을 것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오랜 기간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가 함께 상생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DGB가 대표적인 유럽의 강성 노조이면서도 이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에 대해 얀 베르너 포츠담대 교수는 "노사정에 각기 다른 목소리가 있지만 반드시 협력해야만 살 수 있고 장기적으로 같이 가야겠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협력관계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노동계가 △근로계약 해지 요건 명확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두 가지 핵심의제를 제외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도 대화 상대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전문가들은 그렇더라도 함께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로운 노동개혁 시스템이 야기할 두려움에 대해서도 대화의 장에서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흐 총괄은 "한국은 노사정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게 문제인 것 같다"며 "노사가 대화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는 기업이 늘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주면서 합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역할에 충실해 해고 등 외부 유연성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독일 기업도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전환배치, 효율성 향상 등을 통해 내부 유연성을 키운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방법론도 제시했다. 카텔레네 파스히르 네덜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 부위원장은 "모든 당사자가 함께 앉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대표자들은 소속 단체의 회원들에게 일부 사안은 양보했지만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중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득을 봤다는)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절충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모두가 조금씩은 양보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13년 네덜란드가 노사 사회협약을 체결할 때도 노조는 지나친 유연성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을 원했고 사용자 측은 해고 절차를 간소화하려고 해 일종의 '패키지 딜'이 이뤄지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파스히르 부위원장은 쇠고기에 버터·감자·마늘 등을 섞어 푹 끓인 서양음식 '스튜'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는 "간단한 비결은 결코 없지만 진정한 합의에 도달하려면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가 아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모든 당사자의 의견을 고려해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니 무렌 노동재단(FL) 사무총장은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고 가장 심한 갈등이 있을 만한 주제는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후순위로 미뤄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차차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협상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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