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다섯에 혼자 짐가방을 끌고, 단 하루도 미리 잘 곳을 정해놓지 않고, 육신을 뉘일 곳을 찾아 낯선 땅을 헤매는 미친 짓을 감당하는 나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작가 최영미가 2001년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마치고 훌쩍 떠난 여행에서 이같이 말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행은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 새로움을 만나는 출구다. 저자도 소설을 쓰느라 고생했던 자신을 위로하기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이후 7년 만에 산문집을 낸 그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주변 풍경을 담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양사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예술에 대한 소회 그리고 미술 작품의 설명을 나그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가우디 건축을 탐험하고 바티칸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삶의 진실을 추적하고 쾰른에서는 콜비츠의 인물화 조각에서 인간을 향한 끈질긴 사랑에 공감한다. 화가 박수근과 세잔의 그림, 영화 '꽃잎'과 '일 포스티노' 등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을 화두로 떠난 여행은 저자의 자아찾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서 그들의 방황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면서 저자는 "여행은 '존재'하지 않고 '살기'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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