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과학은 살아있다] <5> 배드민턴<br>구기 종목중 순간스피드 가장 빨라… 날아오는 셔틀콕 보고 반응땐 늦어<br>상대 공격 예측 정확도 높이려면… 반복훈련 통해 지각능력 등 키워야
|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한 가지 동작에서 여러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 선수의 예측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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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민턴은 건강 증진과 다이어트 효과에 힘입어 전국 300만명 이상의 동호인을 자랑하는 인기 생활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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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은 구기종목 중 순간스피드가 가장 빠른 종목이다. 16개의 깃털로 이뤄진 셔틀콕의 무게는 4.75~5.50g에 불과하지만 스매싱을 할 때의 순간시속은 무려 330㎞에 이른다. 공식경기에서의 최고 기록은 332㎞로 지난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 후아이펑 선수가 기록했다. 최근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에서 시험운행에 성공한 KTX의 최고시속 325㎞는 물론 야구, 테니스, 아이스하키 등 볼이 빠르기로 유명한 종목들을 압도하는 속도다.
선수들은 이토록 빠른 셔틀콕을 어떻게 받아내는 것일까. 그 비결은 바로 경기상황에 맞춰 상대선수의 미세한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 다음 상황을 미리 내다보는 예측력에 있다.
#0.1초의 미학
스매싱 한 셔틀콕이 13.4×6.1m(복식 기준)의 코트를 가로지르는 데는 보통 0.15초도 걸리지 않는다. 더구나 선수 간 평균 거리가 불과 8m에 불과함을 감안하면 주어진 시간은 더욱 짧다. 적어도 0.1초 안에 셔틀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반응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엘리트급 100m 육상선수들도 출발신호를 듣고 몸을 움직이는 반응시간이 0.15초 내외다. 다른 종목들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선두도 대략 0.2~0.3초가 걸린다.
배드민턴 선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KISS) 운동생리학실험실에서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남자선수들은 빛과 소리에 대한 반응속도가 모두 평균 0.3초였으며 여자선수는 각각 0.4초와 0.3초로 확인됐다. 이는 여타 구기종목 선수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축구, 하키 등에 비하면 오히려 늦은 반응속도다. 반사신경 만으로는 상대가 스매싱한 셔틀콕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 선수들에게 남은 무기는 단 하나. 미리 움직이는 것이다. 실제로 배드민턴 경기를 자세히 보면 상대 선수의 라켓에 셔틀콕이 맞기도 전에 선수들이 이미 리시브 동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 책임연구원도 "날아오는 셔틀콕을 보고 반응하면 리시브에 성공할 수 없다"며 "선수의 전체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셔틀콕의 이동방향을 정확히 예측,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고 먼저 움직임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예측은 대개 상대의 몸동작, 셔틀콕 위치, 라켓 스윙각도 등 미세한 요소들을 종합 고려해 얻어진다. 또한 배드민턴의 특성상 예측력은 전술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선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여자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의 안재창 코치는 "이효정, 이용대 같은 정상급 선수는 미리 셔틀콕이 날아올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반복적 훈련을 통해 여러 가상 시뮬레이션을 체화함으로써 본능적으로 지각능력을 발휘, 예측을 한 결과"라고 밝혔다.
#몸이 스트로크의 바로미터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나름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 대다수 운동선수의 정보습득 창구가 시각임을 고려할 때 상대의 스매싱 동작을 감지하는 시선행동 패턴이 그 핵심이다. KISS 연구원팀이 지난 2005년 EMR-8(Eye Mark Recorder-8)이라는 고글형 시선추적장치로 경기 중 선수들의 시선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체적으로 일반선수들의 시선패턴은 셔틀콕, 라켓, 타격점 순이었던 반면 정상급 선수들은 셔틀콕, 공간, 타격점의 순으로 시선을 처리했다. 뛰어난 선수일수록 셔틀콕을 바라보다가 공간, 다시 말해 상대 선수의 전체적인 몸 움직임을 보고 어떤 동작을 취할지를 판단해 스매싱 이후의 셔틀콕 이동궤적을 예측한다는 의미다.
이때 상대선수의 위치, 몸의 각도, 라켓의 스윙 속도 및 각도, 점프 여부, 타격점의 높이, 풋워크 등이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단서가 된다. 이 요인들을 분석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공격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적절한 수비동작에 돌입하는 것.
성 책임연구원은 "일련의 타격 준비 동작은 스트로크의 종류와 코스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라며 "상대의 몸에서 이 정보를 빨리 찾아내면 그만큼 심적․육체적 준비를 마친 상태로 안정적 리시브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예측 성공률은 코트 중간에서 이뤄지는 공격에 가장 높고, 코트 후면의 공격에서는 가장 낮다. 전자의 대부분은 스매싱된 셔틀콕을 리시브하는 것이어서 경우의 수가 많지 않은데다 사전 계획에 의한 공격 빈도가 높아 예측이 쉬운 탓이다. 반대로 후자는 공격코스가 워낙 다양하며 셔틀콕이 날아오는 시간이 길어 스트로크 예측에 대한 선수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검은 천, 검은 공 훈련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 같은 예측 메커니즘을 거꾸로 응용, 상대를 속이기도 한다. 안 코치는 "한 가지 준비 동작에서 여러 스트로크가 나오거나 준비 동작 시간을 짧게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 선수의 예측을 혼란시킬 수 있다"며 "국내 배드민턴 남자단식의 에이스로 꼽히는 이현일이 바로 그런 선수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안 코치에 의하면 이현일은 왼손잡이의 장점을 살려 셔틀콕의 비행 궤적을 보통 선수들과 다르게 구사한다. 때문에 상대는 타구 코스의 예측이 어렵고 셔틀콕도 실제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정상급 선수들 간의 대결에서는 상대 움직임만으로 완벽한 예측이 힘들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대표들은 이런 상황까지 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다. 이른바 '검은 천, 검은 공' 훈련이다.
이는 말 그대로 네트와 그 아래를 검은 천으로 완벽히 가리고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검은 셔틀콕을 받아내는 훈련이다.
안 코치는 "선수들은 상대방의 동작이나 자세를 전혀 보지 못한 채 네트 근처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셔틀콕만 보고 리시브를 해야 한다"며 "궤적 예측력과 집중력, 민첩성, 순간 반응속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코치는 또 "이용대 선수 금메달의 원천도 이 훈련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2000년부터 일주일에 2~3회씩 반복적으로 이 훈련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중국만이 수행하고 있으며 유럽 등에는 알려지지 않는 비밀훈련법이다. 이를 보면 과학적 분석과 그에 기반한 체계적 훈련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배드민턴 강국으로 이끈 숨은 공신이라 해도 실언은 아닌 셈이다.
최적의 유산소 운동…다이어트에 큰 효과
■ 배드민턴 열풍 왜? 시간당 열량 소모, 다른운동 보다 높아 전신운동…호흡·순환계 발달에도 도움
그야말로 '셔틀콕 붐'이다. 전국 각지의 생활체육동호회를 중심으로 배드민턴의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배드민턴이 이처럼 각광 받는 근저에는 시간, 장소, 인원 등에 구애받지 않는 편리함이 있다. 라켓과 셔틀콕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배드민턴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운동량을 채울 수 있어 어떤 스포츠보다 다이어트 혹은 체력관리에 효과적이라는 점도 배드민턴의 인기에 열기를 더하는 요인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도 처음 배드민턴을 시작한 동기가 다이어트였다.
실제로 배드민턴은 보기와 달리 꽤 격렬한 운동이다. 10분 정도만 집중해서 플레이를 하면 겨울에도 땀이 흐를 만큼 체력강도가 세다. 성봉주 KISS 책임연구원은 "배드민턴은 저강도, 중강도, 고강도 중 중강도 이상의 운동에 해당한다"며 "경기 스타일이나 선수의 체중 및 경기수준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1분당 5~10㎉ 이상의 열량이 소모된다"고 밝혔다.
1시간가량 배드민턴을 쳤다면 약 300~600㎉의 열량이 소모되는 셈이다. 이는 사이클(111㎉), 경보(114㎉), 에어로빅(126㎉), 조깅(196㎉), 줄넘기(224㎉) 등의 시간당 평균 열량 소모량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높은 수치다.
배드민턴이 다른 어떤 유산소운동 못지않게 다이어트에 좋다는 사실은 최대 심박수(MHR)에서도 증명된다. 유산소운동은 기본적으로 높은 심박수를 유지함으로써 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KISS 구해모 수석연구원 등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기 중 분당 MHR 지속시간을 측정한 결과에 의하면 남자 선수들은 160~169 구간이 31.2%, 여자 선수는 150~159 구간이 26.2%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남자 선수는 150~159(24.1%), 170~179(20.1%)의 비중이 높았고 여자 선수는 160~169(20.9%), 170~179(19.9%)의 순이었다.
MHR이 분당 180회 이상인 고강도 운동량 구간의 비율도 남자는 7.5%, 여자는 15.4%나 됐다. 일반적인 성인이 체지방을 가장 효율적으로 연소시킬 수 있는 최적의 심박수 구간이 130~170이므로 배드민턴은 다이어트에 더없이 적절한 운동인 것이다.
특히 배드민턴은 셔틀콕을 받기 위해 코트의 전후좌우로 쉬지 않고 뛰거나 점프하는 등의 동작을 취해야 해 전신운동은 물론 호흡 및 순환계의 발달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물론 아무리 다이어트에 좋다고는 해도 과유불급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 책임연구원은 "배드민턴은 관절 부상률이 높은 운동인 만큼 이 점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운동강도를 높이다보면 발목, 무릎, 팔꿈치, 허리, 어깨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운동 전 10~15분 이상 충분한 조깅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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